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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클러리사 댈러웨이라는 런던 상류층 중년 여성이 화자인데, 울프는 클러리사의 30년 전과 후의 회고담 속에 전쟁 후유증으로 환각증을 앓고 있는 셉티머스의 이야기를 끼워서 끌고 간다. 그 결과 소설의 중심 화자는 클러리사지만 중간 중간 노출되는 셉티머스의 장면들로 인해 독자는 두 사람의 생애, 두 겹의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클러리사는 고단한 하루를 보낸 지인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파티를 여는 것을 본분으로 생각하고 사는 여자이고, 셉티머스는 매 순간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는 청년이다. 그렇게 흘러오고 흘러가는 어느 하루, 클러리사는 파티에 집중하고, 셉티머스는 죽음을 단행한다. 울프는 이 둘을 런던이라는 한 공간 속에 대비시킴으로써 이 세상에 만연한 정상과 비정상,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을 위해 울프는 시간과 공간의 독특한 결합 방식을 선보이는데, 시간 몽타주와 공간 몽타주가 그것이다.

몽타주란 프랑스어로 ‘조립하다’ 또는 ‘편집하다’에서 파생된 용어다. 조립과 편집의 몽타주 기술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영화와 모더니즘 소설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다양한 분야의 실험을 거쳐 예술사의 중요한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버지니어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시간 몽타주는 대상이 공간 속에서 고정된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의식이 시간 속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공간 몽타주는 시간이 고정되고, 공간 요소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 클러리사가 저녁의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집을 나서 런던의 거리와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보고,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꽃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의식의 흐름 속에 30년 전의 추억과 현재의 상황이 교차하며 움직이는 것이 시간 몽타주이다. 반면 런던 북쪽 리젠트 공원에서 셉티머스가 공포스러운 환각증으로 헛것을 보며 시달리고 있을 때, 하늘에 제트기가 광고 문구를 뿌리며 날아가는 장면을 그곳과는 다른 장소인 런던 남쪽 빅맨 근처의 집 현관에서 클러리사가 바라보는 것이 공간 몽타주이다.

영화 '댈러웨이 부린'_경향DB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교직으로 진행된다. 2016년 3월은 유난히 시간의 속도와 공간의 층위가 긴밀하게 부각된 시기였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칠일’, 천 단위의 AI(컴퓨터)들이 그만큼의 화살촉이 되어 오직 하나의 점을 향해 일사천리로 작동되는 냉정한 순간을 목격했고, 수천개의 판단이 응집된 그 한 점과 맞서는 한 인간의 고심과 결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칠일간, 내가 버지니어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서가에서 다시 꺼내본 것은 바둑돌 하나의 선택 속에 두 겹, 아니 그 이상의 몽타주들이 쏜살같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마지막 1초까지 집중하며 열광한 적이 언제였던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봄날은 왔고, 또 간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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