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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는 민주공화국이다.
 
여러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1945년 8월 15일이라는 한 매듭을 지나서야 한민족은 비로소 자유(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민주주의들을 호흡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을 계기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밑절미로 한 법치, 민주적 절차에 의한 권력 선출 들을 실현할 엄두를 내게 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보할 사항이 많지만, 해방은 기나긴 봉건 왕조 시대를 보낸 뒤, 지난한 반제국주의 투쟁을 이어가는 속에서, 세계 인민과 국제적인 반파시즘 투쟁을 함께한 결과로 얻은 것이었다.


[사진]_해방절 서대문형문소 앞. 구글 이미지에서 따왔음.

 
성균관대 사학과 정현백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 중등 역사 교과서는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이 수많은 선언을 낳았고, 그 선언 저마다가 자유/평등/박애/민주주의/보편적 인권 들을 일깨우는 내용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 선언의 확인과 수사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인민대중 곧 “people”의 투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선언은, 선언 이후의 역사적 시공간이 이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음을 확인하는 언명이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확인과 수사가 제시한 변화를 만들 수는 없다.

한민족이 맞은 해방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해방은 약속이자 기대이자 희망이었지만, 기대와 희망이 좌절되기까지는 금세였다. 게다가 66년 전의 해방은 결과적으로 분단과 전쟁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해방 앞에서 짐짓 고개를 외로 틀기도 한다.
그러나 해방의 약속, 해방의 기대, 해방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과 투쟁이 있었다.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 평화를 꿈꾸는 몸짓을 어찌 다만 헛되다고만 하겠는가.

프랑스대혁명의 그저 그런 선언이 시민 사이의 보편적인 약속으로, 법률로, 제도로 자리하고 작동하기까지, 역사는 다시 힘겨운 과정을 더 걸어야 했다. 선언을 쓴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반동이 찾아왔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길에 다시 흘린 피를 다만 허무와 환멸의 밑천으로만 삼는 태도에 쉬이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우리가 66년 전에 맞은 해방도 그럴 것이다. 귀 기울여 들으면, 66년 전의 해방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미완의 해방을 온전한 해방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해달라는 당부가 들려올 것만 같다.

2011년 8월 15일. 한껏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헌헌법을 펼친다.
조문 앞에 둔, 공포문 격인 헌법의 전문은 이렇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서기 1948년, 단기 4281년 7월 12일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전문이 이러하다. 제헌헙법 또한 삼일운동을 계기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확인하는 문장을 담고 있다. 그리고 지향하는 국가의 정체(正體)-정체(政體)가 “민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다.
이를 실행하는 밑절미는 “정의인도”와 “동포애” “민족의 단결”이다. 이어진 “사회적 폐습을 타파”가 의미심장하다.
봉건왕조와 제국주의 치하라는 반동의 시기를 어렵게 지나오는 동안 쌓인 폐습은 그때까지 온 민족을 질곡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양반 대 상민 대 천민의 차별은 엄존했다. 남녀의 불평등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지주소작제는 봉건적 폐습의 든든한 곳간이었다. 고등교육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아니 서민에게 중등교육도 힘들었다. 제국주의 통치는 관존민비의 심성을 한민족 전체에 각인했다. 오늘도 대한민국에 횡행하는 “행정부 사업 곧 무조건 적법에 합법” “경찰력 곧 법”이란 식의 막된 행태에는 일제 통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 것이다.

사회적 폐습 타파 뒤에 “민주주의 제제도”의 수립이 따라 나오는 것은 형식논리로 보나 상황논리로 보나 지극히 당연했다. 해방의 열기와 활기는 이만한 선언과 확인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수립한 “민주주의 제제도”는 무엇에 복무해야 할까. 또한 이어진 문장 그대로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로서 제국주의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 제국주의 하수인으로서 제국주의 전쟁범죄에 동원된 아픈 경험을 겪은 우리 민족의 시야는 밖으로도 향해야 할 것이다.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는 실감이 낳은 선언이자 확인이리라. 안으로 할 일과 밖으로 기억할 일을 분명히 한 뒤, 전문은 안전, 자유, 행복을 결의하면서 문단을 여미고 있다.

그렇다면 해방을 한 매듭으로 해 태어난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구체적인 조문은 전문과 어떻게 고리를 만들고 있을까?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헌헌법은 언제 들어도 가슴 벅찬, 오늘도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해방된 마당의 나라는 당연히 민주공화국이어야 했다. 이 민주공화국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조문 어디고 그 점을 확인하지 않는 데가 없다. 제5조에서 제8조에 이르는 조문은 한국어 역사에서도 처음 펼쳐 보이는 수사가 아닐까.

“제5조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

“제6조 대한민국은 모든 침략적인 전쟁을 부인한다. 국군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일체 인정되지 아니하며 여하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하지 못한다. 훈장과 기타 영전의 수여는 오로지 그 받은 자의 영예에 한한 것이며 여하한 특권도 창설되지 아니한다.”


해방의 열기와 활기는 수사를 넘어서는 구체에서도 제 목소리를 냈다.

“제18조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제85조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하거나 또는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제87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까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근로자에게는 자본가에 대해, 법률에 의해 이익 균점의 기회가 있다고 했다. 경제상 자유가 무제한일 수 없음도 천명했다. 국유와 국영과 공영에 확실한 지향이 있었다. 토지개혁, 곧 지주소작제 타파가 전제되어야 하는, 거의 혁명적인 변혁 또한 헌법이 확인한 바였다.

수많은 단서, 유보 조항, 주석이 붙어야 할 해방절이다. 그러나 이만한 선언과 확인을 이끌어낸 해방절이다. 그저 고개를 외로 꼬고 있기에 섭섭해 굳이 제헌헌법을 펼친다. 오늘은 2011년 8월 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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