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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1주일에 한 번꼴로 대중연설을 했다. 모두 인상적인데 그중 한 대목을 골랐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습니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했던 인사말의 일부다.

추도식 몇 달 전, 지난 조기대선이 확정되지도 않았을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문 대통령을 만났던 한 인사가 들려준 얘기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곁에 아무도 없었다. 손을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는 정말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비서실장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을 두고 국정운영을 해보고 대통령이 된 헌정사 최초 대통령이라고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 곁에서 느꼈던, 국민에게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종국엔 서로의 손을 거두고 5년을 마무리한 당시의 처연함과 회한은 대통령을 준비하면서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을 게다. 5번의 연설 중 유독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국민 손을 놓지 않겠다”는 표현을 쓴 것도 그 때문이리라.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 뒤로 노 전 대통령의 전신 사진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로 손을 잡는다는 건 서로가 공감 내지는 공유하는 게 있다는 얘기다. 정서적인 문제든, 이익의 문제이건, 정치적인 문제이건. 낯선 이가, 싫어하는 이가 불쑥 손을 내밀면 반사적으로 뿌리치기 십상이다. 80%가 넘는 높은 지지율 속에는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기 위해 국민 속으로 들어온 대통령이 함께 손을 잡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저마다 상대적인 개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한 달밖에 안됐냐는 생각도 들었다. 대선을 치른 게 언제인가 싶었다. 그 폭풍 같은 시간 동안 핵심 참모나 장관 인선은 신선했고, 업무지시를 통한 정책적 조치는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했다. 전임 대통령 때도 취임 첫 한 달이 길게 느껴졌었다. 이유는 180도 다른데, 벌써부터 통치자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피로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늘 문제는 지금부터다. ‘문재인의 시간’도 이제 시작이다. 임기 60개월 중 고작 1개월이 지났을 따름이다. 정치는 결과로 평가받는데 본격적으로 숙제들을 풀어야 할 상황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제시한 과제, 대통령에게 놓인 현안은 쌓여 있다.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으니 점차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도 보일 것이다. 일자리 창출, 사회적 양극화 해소, 검찰개혁…. 쉬운 일은 없다. 한반도 안보 위기 문제는 지금까지 성공한 적이 없는 최고난도의 작업이다.

‘집권 100일 프로젝트’에 따라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국정운영도 주춤하고 있다. 1기 내각 구성이 지연되면서다. 새 정부의 국무위원 확정자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1명뿐이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줄줄이 남았고, 추가경정예산안 문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야당은 구심이 없다. 특히 제1야당이 그렇다. 대선 때는 승리보다 ‘대선 이후’ 주도권을 생각하더니 대선 이후엔 지리멸렬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얘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니문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120석 소수 여당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목표 의식이 약하고, 리더십이 불안정한 야당은 대통령에게도 긍정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은 집권세력의 차지다. 한편으론,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에서 보듯, 다당제라는 게 묘해서 정치력이 발휘될 자리는 있다. 대선 때 거론했던 ‘통합 정부’까지는 아니어도 야당과 사안별 협력·연대는 가능할 수 있다.

개혁에는 기득권 집단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재계가 새 정부의 기조에 반발했다가 대통령의 옐로카드를 받고 일단 꼬리를 내린 것은 기득권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예고편인 셈이다. 이를 뚫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개혁 과제는 결국 국민과 함께해나가야 할 일이다. ‘파격’ ‘깜짝’도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매번 감동을 불러오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시간과 공간은 국민 속에서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은 패권을 낳지만, 국민 속에서 구축되는 것이라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꿔나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국민이 어디 있는지, 아직 손을 잡고 있는지, 손 닿을 거리에 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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