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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아침을 열며]이런 가족

opinionX 2018. 12. 3. 11:41

“양 회장 본인은 항상 직원들을 ‘가족’이라 불렀다.” 불법촬영 영상 유통 혐의 등으로 구속된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진호의 폭력과 엽기 행각을 두고 전직 직원이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양진호 말에 드러난 ‘기업가족’은 한국 사회 고질이다. 이런 가족 은유를 일찌감치 맥패밀리라는 경영전략에 도입한 맥도날드 한국지사는 여전히 직원을 채용하면서 ‘가족을 구합니다’나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일할 분을 구합니다’라는 공고를 낸다.

맥도날드만의 일이 아니다. 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면, 도처에서 ‘가족’을 찾는다.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회장님의 한 말씀에 ‘가족 여러분’이 빠지지 않는다.

이 가족 은유의 허상은 쉽게 드러난다. ‘가족’인데도 최저임금도 아까워하고, ‘가족’인데도 해고해버리고 만다. ‘가족주의’엔 기업(인)의 ‘가족’을 위한 희생과 배려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만 존재한다. 양진호 회사 직원의 말엔 기업(인)의 가족 은유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들어 있다. 착취와 억압, 학대. 가족(family)의 어원인 파밀리아(familia)는 로마에서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부부와 자녀 중심의 가족 공동체라고 이상적인가? 최근 노예가 필요한 여러 가족의 사례가 확인됐다. ‘주님의 종이라는…목사 가족에게 우린 노예였습니다.’ 경기 하남의 한 교회에서 하루 15~19시간 일하면서도 둘이 합쳐 월 100만원 안팎을 받은 집사 부부의 폭로를 다룬 한겨레 보도 제목이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 가족 운전기사는 그 가족 여러 명에게 폭언과 질타를 듣고 해고됐다.

경북체육회 여자컬링 ‘팀킴’의 김은정은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 김경두와 감독 김민정에게 받은 부당한 처우를 전하면서 “예전에는 그들과 가족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지나오면서 답을 찾았다. 결국 그 가족만 한다(챙긴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혈연가족도 권력을 손에 쥐면 ‘기업가족’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억압하며 그들 가족의 결속과 이익을 유지한다.

법조도 ‘또 하나의 가족’이다. “법원 가족 여러분.” 대법원장 김명수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릴 때 빼놓지 않는 표현이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도 가족 여러분을 곧잘 찾았다. ‘검찰 가족’도 공공연하다. 헌법재판관들도 이 표현을 쓴다. 다른 공공기관 기관장들도 공무원들을 종종 가족이라 부르지만, 법조의 가족 표현 사용 빈도는 유별나다. 법원과 검찰을 떠나서도 ‘가족의 연’이 이어진다. 전관예우가 대표적이다. 

법학자 김두식은 <불멸의 신성가족-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창비)에서 법원이나 검찰에서 가족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마르크스-엥겔스) 신성가족을 떠올린다고 했다.      

이들 가족(주의)의 기원은 무엇일까. 김두식은 사회학자 최재석의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을 인용하며 “한국의 파벌과 인맥이 부자(父子) 관계를 원형으로 하고 있어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사람은 권위를 가지고 아랫사람을 보살필 의무를 지고, 아들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절대적인 복종을 미덕으로 한다는 사실도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었다”고 했다.

‘양승태 사법농단’에서 양승태에 아버지를 대입하면, ‘양승태 패밀리’의 일사불란한 위헌 행위의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간의 ‘보살핌’과 ‘절대적 복종’은 그 가족 밖의 시민과 사회를 희생시킨 대가라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혈연가족이나 기업, 국가로 연장된 가족이나 이들 가족의 문제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비롯된다. 이 가족주의는 서로 맞물려서 악순환한다. 양진호 회사의 직원은 “직원들 모두 누군가의 아빠고, 남편이고, 아들이고, 딸인데 그런 수모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참고 다니는 분위기였다”고도 했다. ‘아버지 양진호’가 또 다른 아버지를 억압하고, 억압당한 아버지는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려고 폭압에 순종하고, 불법에 침묵한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는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중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학원장에겐 “구금이 계속되면 가족을 부양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한 80대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내놓은 말이란 게 “손녀 같아 그랬다”이다. 폭력과 착취를 저지르고도 가족 운운하는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민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이 나온 게 1976년이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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