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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아버지 부시

opinionX 2018. 12. 3. 11:36

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하는 전기는 사실성과 객관성이 생명이다. 이 때문에 전기 작가가 자료와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쓰는 게 관례이다. 그러나 자료 수집과 취재를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인물의 전체를 온전히 복원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거나 가족 또는 측근이 일대기를 남기기도 한다. 이는 객관성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지만, 제3자가 알지 못하는 내밀한 사실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기나 회고록 가운데 <나의 아버지 박지원> <나의 아버지 등소평> <나의 아버지 여운형>처럼 아들이나 딸이 작가로 등장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 책은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인물에 대한 묘사가 도드라진다. 또한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담아내 가족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들 전기는 역사인물에 대한 기록이면서 가족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미국 41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H W 부시는 생전에 두 권의 전기를 헌정받았다. 2006년 막내딸 도로 부시 코크가 쓴 <나의 아버지, 나의 대통령>과 2014년 큰아들 조지 W 부시가 펴낸 <나의 아버지 부시 41>이 그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전기를 두 권이나 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존경심과 자부심이 컸다는 증거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43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그는 회고록 <결정의 순간>을 낸 데 이어 아버지 전기를 썼다. 아들 부시는 책에서 아버지 부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면서 훌륭한 대통령에 앞서 더 훌륭한 아버지인 이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아버지 부시가 세상을 떴다. 부시는 가정의 가장으로서뿐 아니라 대통령으로서도 미국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과  냉전 종식을 이끌어냈다. 이후 베를린장벽과 소련 붕괴에 따른 구체제 해체기의 혼란 수습에 앞장섰다. 앞서 2차 세계대전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러나 걸프전 개입과 파나마 침공 등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화시켰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제 가족이 헌정한 전기가 아닌, 그의 공과를 따지는 평전을 써야 할 때가 됐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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