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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은 전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이 있다. 10년 이상에 이르는 학창 시절 동안 배우는 거야 많지만 인간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배우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인가? 야생학교의 설립자로서 나는 거리낌 없이 선언한다. 인간이 배워야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다른 생명과 사는 법’이다.


꺅!! 길거리를 걷다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치한인가? 유명 연예인이 나타났나? 아니면 누군가 복권이라도 당첨된 건가? 아니다.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려보면 불쌍한 비둘기 한 마리와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가려는 여성 한 명이 눈에 띈다. 비둘기가 무슨 외계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혐오로 몸서리친다. 물론 비둘기가 다소 가까이 날아 왔을 수도 있다. 물론 비둘기의 깃털이 노숙인 같은 바랜 회색빛일지도 모른다. 물론 비둘기의 한쪽 발이 불구였을 가능성도 인정된다. 하지만 심심찮게 도심 속에 울려 퍼지는 이 작은 새를 향한 거친 야유는 온당치 않다. 인간이 무심하게 버린 쓰레기와 토해낸 오물을 치우며 평생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가 해주는 인사가 이렇게 정색한 거부반응이어야 하는 것인가? 야생학교는 묻는다.  


징그러운데 어쩌란 말인가요? 싫다는 말 앞에선 그 어떤 논리도, 사상도, 정당화도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동하지 않고 몸이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면 말해봤자 소용없는 거다. 여기서 상황을 살짝 바꿔보자. 남자가 혐오스러운 여자, 또는 여자가 거북한 남자. 이런 사람을 떠올려보자. 성장과정에 겪은 어떤 사건으로 초래된 결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자를 만드는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이성을 대할 때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을 두고 우리는 그냥 취향의 문제거니 하며 돌아서지 않는다. 때로는 정성스러운 대화와 상담으로, 때로는 전문적인 치료와 다양한 경험으로 생명의 근본적인 기쁨인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노력한다. 싫다고 해서 그뿐이 아니다.



지난 2월 초 영국 런던의 한가운데에서 여우가 가정집에 들어와 잠자던 한 살배기 아기의 손가락을 물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상한 낌새를 채고 마침 방에 들어온 엄마가 아니었다면 데니라는 이 아기는 하마터면 여우 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론은 당장 들고 일어났다.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는 도시 여우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대책이란 여우의 숫자를 ‘줄이는’ 일이다. 잡아 죽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점잖은 언론용 표현이다. 실제로 영국에서 여우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일상이 됐을 정도로 도시에 잘 적응한 종이다. 민가에 서식하는 개체가 3만여마리에 이르고, 중형 개 정도의 크기에 송곳니를 가진 사냥꾼이다 보니 어른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방비 상태의 아이는 여우도 눈독을 들이는 대상이다. 멀쩡히 자다가 손가락을 잃은 아기를 계기로 불거진 시민들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우 사건이 보도된 같은 날에 필리핀의 어느 마을에서 50년 먹은 대형 악어가 생포된 소식이 전해졌다. 저수지 같은 곳에 우연히 갇힌 악어는 동네 어부 여러 명을 앗아간 후 밧줄을 삼키다 그만 잡히고 만 것이었다. 위험한 정도로 말할 것 같으면 여우는 비교도 안되지만, 이 악어는 당국에 의해 안전한 서식지로 옮겨졌다. 모든 악어를 말살해야 한다는 길거리 시위는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생물과 말 그대로 함께 산다. 열대우림에 사는 사람들은 밤중에 다닐 때에는 특별히 뱀을 밟을까 조심한다. 북극지역의 주민은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부족해진 먹이를 찾아 민가에 찾아오는 북극곰 걱정을 한다. 호랑이가 사는 숲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산책 한 번 잘못 나갔다가 생길 위험을 인지하고 다닌다. 하지만 이들은 버젓이 이 동물들과 같은 땅을 공유하며, 동물과 갈등을 겪더라도 여전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국제사회도 이 귀중한 동물들과 공존하도록 지역주민을 설득 및 지원하고 각종 보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위험하든 징그럽든, 싫든 좋든 우리는 이 지구를 여러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아니 사실은 대부분의 동식물을 쓸어내 버리고 우리끼리 살고 있다. 주변을 보라. 인간 외에 남은 자가 대체 누구인가? 우리밖에 없는 이 도시의 무자비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비둘기가 시사하는 바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대신, 이제는 야생학교의 선생님으로 삼아보자. 야생학교, 이제 개강이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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