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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 읽기 모임에 다녀왔다.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집을 읽고 느낀 점을 30~40대들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소설은 연애, 결혼준비, 결혼, 육아 등을 여성의 시선에서 풀어낸 내용을 담았다.

성차별적인 직장과 가부장적인 가족 때문에 한국이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일하며 살기에 가혹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여전히 많지만, 조직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정에서 느끼는 책임감은 조직생활에서 무책임으로 해석되고 만다.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문제가 많기 일쑤다. 남성 육아휴직도 걸음마 중이다. 이런 구도를 간파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부담스러워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농경사회’에 태어난 세대의 전통적 가족관은 여전하다. <아침마당> 같은 TV프로그램의 주역인 중년 출연자들은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지만, 여자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전통적 가치를 옹호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집에 인사 온 예비 며느리에게 앞치마를 안기고 과일 깎는 실력을 평가한다. 인사치레라도 아들에게 아침을 잘 챙겨주겠다는 며느리를 좋아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면 ‘어른의 말씀’을 이해할 것”이라며 자신을 이해해주길 기다리는 시어머니들도 많다. “요즘 애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지만, 전통적 가치는 공기와도 같다. ‘주말연속극’에 3대가 모여 사는 현실에 없는 단독주택 대가족이 나오듯이, ‘무난한 가족’도 토크쇼상에서만 은연중에 유지되는 셈이다. 세대 간 인식이 서로 포개지지 않기에 당연히 이해되는 게 적다. 결혼과 육아 비용만큼 소통 비용도 올라간다.

토론이 시작되고 기혼 남성인 나는 가만히 들어보려고 했다. ‘난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가. 난 어떻게 오만한가?’ 성찰의 시간으로 삼으려 했다. 한 여성의 시댁 방문담에서 예상은 좀 틀어졌다.

또래의 그녀는 20~30대 여성들이 대개 그렇듯 딸·아들을 구분하지 않는 집안에서 자기 이름으로 일하며 살라고 교육 받고 자랐다고 한다. 시댁에 인사 간 날, 시어머니는 앞치마를 손에 쥐여줬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은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워 TV를 봤단다. 그녀도 앞치마를 치우고 그냥 소파에 같이 앉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어디서 저렇게 버릇 없는 애가 왔냐”면서 야단을 쳤단다. 그녀는 “이 집에 시종으로 온 거 아니잖아요”라며 받아쳤다.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딸같이 생각해서 그런 거다” 하면, “엄마 말 곧이 듣는 딸이 어디 있어요. 다들 대들고 투닥거리죠” 하면서 반박했다. 몇 년 지나 둘은 동네 사람들이 시샘할 정도로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지나고 보니 며느리가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정말 좋다고 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현남 오빠에게>, 웹툰 <며느라기>는 ‘말할 수 없는 여성’과 ‘말 못하게 만드는 구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딸, 며느리, 엄마, 아내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고구마 몇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함을 주는 구조를 말한다. ‘미투’ 운동은 이 세계 속 성폭력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는지를 전한다. 일련의 분위기에서 의아한 것은 ‘따지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관계를 노사관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의 일터는 도식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며 전근대적인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 위계관계를 강요한다. 그러나 착취와 소외는 노동조합과 사측의 교섭에 따라 변화한다. 협상하다 고성이 오갈 수 있다. 대화가 안되면 파업과 직장폐쇄가 벌어지기도 한다. 제대로 된 협상 과정으로 신뢰의 합의 도장을 함께 찍어야, 서로 존중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고부관계에는 충분한 교섭이 없다.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중재자’이자 ‘효자’인 남편들은 엄마에게는 자신이 따질 테니, 아내에게 ‘무난함’으로 시어머니의 말을 ‘그러려니’ 들으라 한다. 지지받지 못하는 아내는 피곤한 교섭을 회피하게 된다. 자괴감에 낙담하기 일쑤다. 가부장제가 지지하는 성역할의 근본적 모순은 ‘여-여 갈등’으로 축소되고 은폐되기 마련이다. <B급 며느리>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은 ‘못된’ ‘B급 며느리’로 불린다. 전통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시어머니에게 할 말은 하며 끊임없이 교섭을 추구하고 필요시 분쟁도 감수한다. 협상이 결렬되면 연락을 끊거나 명절 방문을 취소한다. 남편 할머니집 ‘비무장지대’에서 ‘중재’가 벌어지기도 한다. 고부간에 극한 대립을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이해하는 가족의 학습과정이 된다.

여성이 미투의 광장에서처럼 ‘시월드’에서도 크든 작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며느리가 무난할 필요 없다”는 게 보통사람 다수의 상식이 되는 것을 정책의 목표로 해야 한다. 부모세대가 젊은 세대의 맥락을 이해하고, 새 가족을 잘 맞이할 수 있게끔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모 학교’를 며칠간 열면 어떨까. 본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냉랭한 기운을 이해하고 타파할 계기가 될 것이다. 아침 방송도 ‘며느리 길들이기’ 대신 분투하는 여성들의 ‘교섭 사례’를 다뤘으면 한다. 주변의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가족들을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보여줘야 한다. 방관하지 않는 남자들도 만들어야 한다. ‘뭘 하면 안되고 문제인지’뿐만 아니라,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풍성해져야 한다. 가사 참여뿐만 아니라 좋은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평범한 남성들에게 롤모델로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구시대적인 가족과의 분쟁까지 감수하며 ‘결혼’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교섭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비혼)는 일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미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됐다. 결혼이 무릅쓰고라도 해볼 만한 게 아니라면 점점 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결혼해도 괜찮아” 하며 안심할 수 없다면, 자발적 고독마저 감수할 것이다. 전통가족과 직면하여 반문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려는 며느리의 목소리를 응원하고, 그들이 고립되지 않게 제도적인 소통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가족의 소통 비용을 낮춰주는 것은 이미 지체된 사회에 부여된 최소한의 과제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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