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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로 갈거나/ 가서는 허기져 콧노래나 부를가나/ 이왕 억울한 판에야/ 우리나라보다 더 억울한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거나…”(박재삼 ‘서시’) 1950~1960년대 희망이라고는 찾기 힘든 절대적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을 담은 시다.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차라리 남의 나라에 가서, 그것도 이 나라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억울한 일이 벌어지는 그런 나라에 가서, 억울함이 더 골수에 차고 차도록 살아보려 했을까”(송복 <특혜와 책임>). 좌절은 이 지옥 같은 땅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깊어진다.

‘헬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옥(hell)과도 같다는 뼈아픈 자조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도, 꿈도 포기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이 희망 없는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울분과 냉소의 언어다. 현실은 암울하고 미래 비전도 안 보이는 이 사회가 ‘지옥 같은 계급사회’라는 발화다. 여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식의 위로나, “네가 ‘죽도록 노오력’하지 않았다”는 훈계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헬조선’ 담론이 확산되던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진흥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해결이 얼마나 화급한 일이냐, 그런데 국내에만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라고 외쳤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정부는 그 모든 탓을 청년들에게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청년들의 비분은 “니가 가라! 중동”이란 말로 집약됐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이 강연에서 “젊은이들은 여기 앉아서 취직 안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가면 ‘해피조선’”이라고 말했다. 취업난도, 헬조선도 진취적이지 못한 청년들 탓으로 돌린 꼴이다. 청년들에게 ‘중동 가라’고 다그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의 ‘나라다운 나라’가 젊은이들이 ‘탈조선’하는 나라인가. 청년들이 아세안을 안 가봐서 ‘헬조선’이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요. 그러니 청년들이 이리 분노하는 것이다. “니가 가라! 아세안.”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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