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바다코끼리

opinionX 2014. 10. 3. 21:00

혹한의 북극지방에는 먹을 게 넉넉지 않다. 동물들의 생존 경쟁이 다른 데보다 더 처절하고 극적일 수밖에 없다. 북극지방을 무대로 하는 동물 다큐멘터리가 많은 연유일 터이다. 북극 여우가 철새의 알을 훔치려고 추락 위험을 무릅쓰며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고, 철새 새끼가 첫 날갯짓을 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여우의 먹이로 전락하는 대목에선 처절함을 넘어 생명에 대한 외경이 느껴진다.

반달무늬물범과 천적 북극곰 간의 사투도 가슴을 뛰게 한다. 포유류인 반달무늬물범은 때때로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얼음 속에 공기가 통하는 숨구멍을 10여개 만든 뒤 그중 한 곳에 잠시 머물며 숨을 쉬는데, 이곳이 곰의 사냥터가 된다. 북극곰이 여러 숨구멍 가운데 물범이 있는 곳을 찾는 장면은 러시안 룰렛을 연상케 한다.

자칫 엉뚱한 곳을 공격할 경우 물범은 곧바로 도망친다. 물범이 물가에 이르기 전에 잡기 위해 곰이 얼음 위를 내닫고, 물범 역시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광경을 손에 땀을 쥔 채 본 적이 있다.


북극곰이 얼핏보면 반달무늬물범과 유사한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경우도 있다. 얼음이 녹고 물범 사냥이 불가능해지면 바다를 수십㎞ 이상 헤엄쳐 바다코끼리 서식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코끼리 성체 수컷은 2t 가까운 덩치에 20㎝의 엄니가 있어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힘이 약한 암컷이나 새끼를 공격한다.

이렇듯 동물들의 생존 경쟁은 무자비해 보이지만 그래도 정직하고 일정한 선을 지킨다. 다른 동물의 목숨을 취하지만 그 규모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이를 어길 경우 반드시 응징을 당하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다.

북극에 사는 바다코끼리 3만5000마리가 최근 미국 알래스카주 해안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탓에 서식지인 북극 빙하가 크게 줄어들자 엉뚱한 곳으로 내몰린 것이다. 바다코끼리는 빙하 위에서 새끼를 낳고 먹이도 빙하 위에서 먹는다. 육상 최대의 포식자인 북극곰마저 함부로 못 건드리는 바다코끼리도 인간의 한없는 탐욕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