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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왜 ‘쓸데없는’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실제 쓸모없다기보다 정색하고 덤벼들지 않겠다는 ‘말의 유희’다.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등 각계의 ‘고수들’이 내뱉는 말은 꽤 흥미롭다.

<알쓸신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상상력 사전)을 떠올렸다. 베르베르는 청소년기부터 30년 넘게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기록해왔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이 <개미> <타나토노트> <뇌> <나무> <파피용> 같은 그의 독창적인 소설의 밑거름이 됐다.

<상상력 사전>은 꽤 엉뚱하지만 박식함도 느낄 수 있는, 이를테면 ‘베르베르식 개똥철학사전’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항목을 보자.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 1%의 칼륨,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큰 숟가락으로 한 술 분량의 여러 가지 희유(稀有) 원소, 즉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포함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면서 훌륭한 건축물이다.’

지식인, 특히 예술가 중에는 자신의 시각을 이런 독특한 언어의 묘미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나 창의력이란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비틀어서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것, 한번 꼬아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기존의 생각 회로 대신 새로운 접근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발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사실이라도 뒤집어볼 때, 생각의 밑변과 각도가 바뀌게 된다. 그게 ‘삶의 통찰’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도 말의 묘미를 보여준 작가다. ‘투르니에 사전’이라면 <생각의 거울>을 들 수 있다. 포크와 스푼, 목욕과 샤워, 동물과 식물같이 상대적인 개념을 놓고 위트 있는 해석을 곁들인다. 이런 식이다. ‘스푼이 채식주의적 소명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서 포크는 육식의 상징이다.’

원래 투르니에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다.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비튼, 생각의 도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이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문명화시킨다는 백인 우월주의 시각을 보여준다. <방드르디>는 원주민인 방드르디가 로빈슨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끄는 주체로 부각된다. 방드르디는 프랑스어로 금요일(프라이데이)이란 뜻이다.

한국에도 언어의 유희를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이 꽤 있다. 이외수의 소설 <들개>에서 주인공 ‘나’는 ‘새우리말 사전’을 쓴다.

물가고 현상: 물건값은 오르고 사람값은 떨어지는 현상, 돈: 인간을 가장 빨리 더럽히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오물, 빙하시대: 인류가 냉동 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무의촌: 본의 아니게 국가로부터 주민 모두가 의사임을 허락받고 있는 촌. 사랑: 마음으로 이성 간에 착한 독약을 만드는 일….

박민규는 어떤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당시 ‘프로가 되라’는 자기계발 열풍을 신랄하게 꼬았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한국 경제사에서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나온, 그러나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로복음 10호 되겠다. 역시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원래의 뜻은 ‘옷 사세요’라는 말이다.’

말은 시대와 세상을 담는다. 세상이 변하면 단어의 의미에 틈새가 생기며, 이 틈새를 벌리거나, 새로운 말을 박아넣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언어의 유희다.

술자리에서 동료가 말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싶다고. 난 이렇게 답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시대에 안빈낙도가 어딨냐? 안부낙도(安富樂道)만 가능하지!”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젠 사어에 가깝다. 즉답 안 하면 ‘문자 씹었다’고 눈총받는다. ‘갑남을녀(甲男乙女)’? 유리천장이 두꺼운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남자가 갑, 여자는 을. ‘졸부(猝富)’? 졸부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도시 건설과 재개발 열풍이 불어 하루아침에 땅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던 때나 어울리던 말이다. 이제 부는 철저히 대물림되는 ‘시스템 사회’가 됐다. 요즘은 중산층도 하루아침에 빈민층으로 추락한다. 하여 ‘졸빈(猝貧)’이란 단어가 필요하다. 구어체로는 ‘폭망’…. 따져보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많은데, 나도 이참에 개똥철학사전이나 하나 써볼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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