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전구와 GE

opinionX 2017. 11. 16. 11:11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 안뜰은 조선 고종의 어명으로 전기가 공급돼 문명의 빛을 밝힌 유서 깊은 곳이다. 1887년 3월6일 건청궁에는 750개의 ‘요상한 물건’에서 불빛이 쏟아졌다. 고종과 신하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도성의 선무당들은 “꺼지지 않는 도깨비불”이라며 난리굿 판을 벌였다고 한다. 에디슨 전기회사가 설치한 ‘요상한 물건’은 130여년간 세상의 어둠을 몰아낸 ‘전구’였다. 인간 생활에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인 전구는 1879년 10월 미국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한 지 7년5개월 만에 조선에 들어왔다. 중국·일본에 몇 년 앞서 수입된 전구는 조선 근대화의 불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구의 최초 발명자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다.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가 1808년 발명한 아크등은 지나치게 강렬한 빛과 열기 때문에 가정용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1844년 미국의 19세 청년 존 웰링턴 스타는 필라멘트로 빛을 내는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하지만 그는 특허를 내지 못하고 22세 때 폐렴으로 숨졌다. 에디슨은 1879년 영국 과학자 조지프 스완과 함께 진공 속에서 탄화(炭化)된 실을 유리구 내에 넣고 백금을 사용해 바깥과 연결한 전구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머리 위에 전구가 켜지는 기호적 표현을 사용했다.

전구를 상품화해 큰돈을 번 에디슨은 자신이 설립한 ‘에디슨 램프’를 모태로 1892년 출범한 GE의 공동창업자가 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업체로 성장한 GE는 1980년대 이후 금융, 미디어, 의료기기, 서비스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GE는 13일(현지시간) 회사의 상징이었던 전구사업을 비롯해 12개 사업부문을 2019년까지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CNN이 보도한 대로 “전구가 없는 GE는 전화가 없는 AT&T, 토마토 수프가 없는 캠벨, 쉐보레가 없는 GM과 같은 느낌”이다. 한때 혁신의 대명사였던 GE가 처한 상황은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백열전구와 흡사하다. 하늘에 있는 에디슨이 안타까워할 일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