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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키파와 다원주의

opinionX 2019. 5. 30. 10:44

독특한 형태의 의복이나 장신구, 장식 등 상징물은 이를 공유하는 집단에 자부심, 단합과 동료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배타성으로 인해 반감을 키우고 나중엔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종교적인 상징물 가운데 머리에 두르는 두건이나 모자만큼 눈에 잘 보이는 것도 드물다.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히잡이 대표적이다. 히잡은 머리 등 신체 일부를 가리지만, 부르카나 니캅과 같이 신체의 대부분을 감싸는 것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정교분리 원칙을 말하는 ‘라이시테’에 근거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인정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종교적 행위를 철저히 막는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학교에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함에 따라 히잡 착용이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여성 차별의 상징 vs 문화적 차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증가하는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독일에서는 유대인들의 전통모자인 키파 착용을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27일 독일정부 산하 반유대주의 대응 책임자는 ‘알 쿠즈의 날’에 키파 착용 금지를 발표했다. 유대인 혐오 범죄의 발생을 우려해 국민을 상대로 착용 금지를 요청한 것이다. 물론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항복’이라고 반발했다. ‘알 쿠즈의 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지배를 반대하는 연례 시위를 갖는 날이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반유대주의 대응 책임자와 정반대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키파를 쓰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반유대주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독일 최대일간지 ‘빌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신문 1면에 키파 그림을 넣고 사용법도 게재했다. 그리고 “다윗의 별을 달고, 반유대주의 깃발을 들고, 자신들의 키파를 만들어 유대 이웃들과 연대하자”고 촉구했다.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하나일 수 없다. 그런데 인종주의와 차별, 혐오로 범벅된 편견을 자유와 진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이 빈발한다. 인종과 종교, 이념을 넘어서는 다원주의를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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