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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건강에 아주 좋다. 토마토의 여러 좋은 성분 중 라이코펜이라는 식물의 이차대사산물은 아스타잔틴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천연 항산화제이다. 이차대사산물은 어떤 생물체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수적인 대사산물은 아니지만 성장이나 외부 유해균으로부터의 보호, 향을 내어 곤충 유혹, 그리고 다른 식물과 상호작용 등의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식물이 만드는 수많은 이차대사산물 중에는 라이코펜, 아스타잔틴과 같이 좋은 효과가 있는 것들이 많다 보니 이들을 함유한 건강보조제들이 많이 시판되고 있다. 단순히 건강보조용이 아니라 실제 치료용 의약품들도 식물 유래의 이차대사산물들과 그들의 유도체인 경우가 많이 있다. 해열제와 진통제로 널리 사용되는 아스피린의 화학명은 아세틸 살리실산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해열제로 사용되었던 버드나무 껍질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바닐라 향과 같은 식품첨가제로 쓰이는 이차대사산물들도 있다. 이렇게 유용하고 다양한 이차대사산물들은 식물을 재배하거나 식물세포의 배양으로만 생산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대사공학을 통해 식물들이 생산하는 천연물들을 미생물이 생산하도록 만들고 이렇게 개발된 미생물의 발효로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미생물에 의한 생산의 경우 식물과 같이 기후변화와 날씨, 토양의 질과 재배 인력 등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품질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몇 가지 예를 보자. 포도 껍질에 많이 있는 폴리페놀계 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은 항암, 항염, 항노화, 심지어는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드시지는 않아야겠다. 프렌치 패러독스는 적포도주를 많이 마시면 레스베라트롤을 많이 섭취하게 되어 오래 살게 될 것 같지만, 효과를 보기 위해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면 오히려 더 독이 된다. 따라서 생명공학자들은 효모를 대사공학적으로 개량해 레스베라트롤을 발효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병원에서 매우 중요한 진통제로 쓰이는 모르핀은 양귀비로부터 획득한다. 양귀비의 덜 익은 꼬투리를 긁어 상처 내서 채취한 유액을 말려 얻는 아편의 여러 알칼로이드 성분 중 하나가 모르핀이다. 2015년 캘리포니아공대의 크리스티나 스몰키 교수는 양귀비, 박테리아, 심지어는 쥐로부터 적절한 유전자들을 조합해 효모를 대사공학적으로 개량함으로써 모르핀 전구체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는 생산 농도가 아주 낮지만 효모의 추가 대사공학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양귀비 경작을 하지 않고도 모르핀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안세이아라는 회사를 창업해 기술을 개발 중이다. 모르핀을 화학적으로 조금만 변형하면, 정확히 말하자면 모르핀에 있는 두 개의 수산기를 메톡시기로 치환하면, 소위 마약의 최고봉이라는 헤로인이 된다. 평소 잘 알고 있는 스몰키 교수이기에 이러한 마약 남용을 포함한 안전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연방수사국(FBI)에서 매우 심각하게 감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5년 중국의 투유유 박사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아티미시닌은 말라리아 치료제인데 개똥쑥 등의 식물에서 아주 미량 만들어진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제이 키슬링 교수는 10여년에 걸친 대사공학 연구 끝에 효모를 이용해 아티미시닌의 전구체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제약사를 통해 상용화했다. 또한 키슬링 교수는 홉의 맛을 내는 이차대사산물을 효모가 만들게끔 하여 홉을 넣지 않고 맥주 발효를 해도 홉을 넣어 발효한 맥주와 유사한 맛을 내는 맥주 생산 기술도 개발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대마초가 합법화되는 것에 맞추어 대마의 성분 중 하나인 테트라 하이드로 카나비놀과 유도체들도 효모의 대사공학에 의해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식물의 이차대사산물들을 미생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필자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아스타잔틴을 생산하는 대장균을 예로 들어 보자. 우선 대장균은 아스타잔틴뿐 아니라 아스타잔틴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여러 효소들이 모두 없기 때문에, 이들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들을 도입해 생산이 가능하도록 대사회로를 먼저 설계했다.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5개의 유전자를 가져오고 미세조류로부터 유전자를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아스타잔틴이 합성될 수 있도록 대장균 내에 대사회로를 구축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생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정교하게 대사의 흐름을 조절해 줘야 한다. 복잡한 대사공학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대장균은 발효를 통해 1ℓ당 432㎎의 아스타잔틴을 생산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논문에 발표했듯이 포도향을 생산하는 대장균과 코리네균도 개발했다. 포도의 향으로 쓰이는 메틸 안스라닐레이트는 식품, 화장품,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는데 이제까지는 모두 화학적으로 합성된 것을 사용했다. 대장균과 코리네균의 방향족 아미노산 대사경로를 체계적으로 조작하고 그 후 식물 유래의 마지막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도입하고 전체 대사회로를 최적화함으로써 발효에 의해 메틸 안스라닐레이트를 1ℓ당 5g 이상 생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식품이나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물질들의 경우 화학적으로 합성된 것보다 이렇게 발효생산된 화합물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들 제품이 보다 고가에 판매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기능성 천연물질들은 식품, 건강,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그 수요가 급속히 늘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인구는 77억명을 넘어 100억명을 향해 계속 증가 중이다. 또한 급격한 고령화가 이루어지면서 건강 유지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기능성 천연물들은 우리가 건강하고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생물 대사공학에 의한 기능성 천연물들의 생산은 이렇게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우리 몸에 안전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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