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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황제 의전과 변기

opinionX 2016. 12. 26. 11:11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의전을 중요시했다. 그는 골프를 칠 때 앞뒤 팀을 받지 못하게 했다. ‘황제 골프’란 말은 그때부터 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코스 하나를 공짜로 독점하며 골프를 쳤다. 그의 골프 행차 때면 청와대에서 골프장까지 경찰이 배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황제 테니스’를 했다. 서울시장 때 남산 테니스장에서 3년가량 공짜로 테니스를 쳤던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주말에 반값 요금만 내고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황제 테니스’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황제 의전의 종결자’로 불릴 만하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영국 국빈 방문 때 5성급 호텔의 침대 매트리스와 샤워꼭지를 바꾸고, 머리손질과 화장을 위해 객실에 조명등 2개와 스크린 장막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14년 부산 벡스코 아세안 정상회의 때는 박 대통령 전용 화장실을 위해 세면대와 변기를 새로 설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천시장 재직 시절 박 대통령의 인천시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변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변기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 시민운동가는 광화문 촛불집회 때 모인 성금으로 2만원짜리 유아용 변기를 구입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청와대에 발송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이 전용 변기를 쓰기 위해 멀쩡한 변기까지 교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장도리]2016년 12월 19일 (출처: 경향신문DB)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황제 의전’으로 자주 입길에 오르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한 임대아파트를 방문하면서 주차된 차량을 빼달라고 해 주민들에게 “대통령 코스프레 하지 말라”는 항의를 받았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3월 관용차를 타고 서울역 KTX 승강장까지 진입해 ‘황제 의전’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24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황제 의전’만 즐긴 배를 물이 뒤집는 걸 다른 사자성어로도 표현할 수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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