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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전국적으로 70만명이 모인 9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심판 진행을 통한 ‘조기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의 함성이 높았다.

헌재의 탄핵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첫째, 대통령의 ‘즉각 퇴진’은 대다수 국민들의 일관된 민심이다. 국회의 탄핵소추 직전에 ‘국회가 여야 합의로 퇴진 일정을 정해주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일부 정치권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국민들은 미동도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스스로의 하야가 됐건, 헌재에 의한 파면결정이 됐건 박근혜 대통령과는 함께할 수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오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행사하는 헌법재판권도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의해 주권자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헌정을 중단시킨 대통령에 대한 ‘즉각 퇴진’ 요구는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여론이 아니지 않은가. 주권자 국민들이 상당기간 일관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민심이다. 헌재에서는 이러한 민심을 잘 살펴 신속한 탄핵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국익을 위해서도 신속한 탄핵결정이 꼭 필요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한 국정수행은 임시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안으로는 경기 침체로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있고 밖으로는 미·중·러의 대립과 북핵 문제로 여러 외교·국방상의 현안들이 쌓여가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아 적극적인 국정수행으로 이러한 국내외의 위기들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비정상적인 권한대행 체제로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지난 22일에 헌재에선 제1차 준비절차기일이 열렸다. 3명의 수명 헌법재판관들은 5번이나 ‘신속한 진행’을 강조했다고 한다. 문제는 대통령 측의 태도다. 대리인단을 통해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답변서에서 13가지 탄핵소추 사유 전부에 대해 부인하고 철저한 사실조사를 요구했다고 한다. 탄핵심판을 사실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형사재판처럼 끌고 가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끝까지 민심과 국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 헌법재판의 하나이면서 ‘파면’을 통해 일종의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은 징역형 등의 형사처벌을 통해 형사책임을 묻는 형사재판과 그 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같을 수 없다. 징역과 같은 형사처벌을 내리는 형사재판에서는 징역 몇 년으로 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사실조사를 통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격한 혐의 입증이 필요하지만, ‘파면’이라는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에서는 그 정도로 철저한 사실조사와 혐의 입증이 필요 없다. 개략적인 사실조사를 통해 13가지 중 어느 하나의 탄핵소추 사유에서라도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지위에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신임을 박탈할 정도의 위헌 혹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바로 파면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형사상 유무죄를 가리는 철저한 사실조사는 탄핵인용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그 후 기소돼 형사재판에 넘겨졌을 때 하면 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을 하고, 형사재판은 법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결정은 1월 말 박한철 소장의 퇴임 전까지 내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한대행에게는 헌재소장이나 헌법재판관과 같은 중요한 인사를 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1월 말 박 소장 퇴임, 3월 중순 이정미 재판관 퇴임 후의 후임자 선출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한다. 9명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있을 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서두르면 충분히 가능하다.

특검도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불응하면 진실규명을 위해 강제수사도 가능하다. 헌법 84조가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재직 중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기소’ 면제의 특권이다. 기소 이전의 수사단계에서 특검이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영장을 신청해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 탄핵소추의결로 권한행사가 정지된 대통령은 직무수행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형사상 특권이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 자체가 없는데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형사상 특권을 보장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재의 파면결정에 추가적인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지금 국민들이 헌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지체된 탄핵결정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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