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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


“그 남자가 직장에서 딱 자기 친딸 나이인 여성을 성희롱했다니까요.”


“피해자를 타인이 아니라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첫 번째 멘트는 몇 해 전 소위 한 스타강사가 C 언론사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가서 강의할 때 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또 “세상에나 자기 딸 나이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니까요”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강사들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다. 가장 설득력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가족관계를 왜곡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성희롱 예방교육의 강사 말대로 성희롱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의하면, 부부폭력의 한 유형인 성학대는 폭력유형별 발생률에서 10.4%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친아버지는 친딸을 성폭행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전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친족관계인 비율은 2.4%나 된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의 유형에서 계부보다 친부인 경우가 조금 더 많다.



가족은 성별, 연령에 기반을 둔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약자는 나이 어린 여성이기 쉽다. 가장의식에 기반을 둔 많은 아버지들은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일부 아버지들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위해 아동을 이용할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사랑의 안식처라는 신성한 가족의 이미지를 뒤흔들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험난한 세상살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가족 안에서 성적인 폭력을 경험하고,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손가락질해도 가장 자식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어머니는 피해여성의 입을 막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오빠 인생 망치겠다는 거야?”,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는 다 굶어죽어.” 어린 딸의 성폭력에 대한 자각, 의식은 가족해체를 부추기는 행위로 등치되고 피해자의 침묵이야말로 가정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여기게 된다.


잔인한 나의, 홈 (네이벼 영화)


최근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집이 발간됐다. 그녀들은 북콘서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금기였고 외면당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아오리 감독의 <잔인한 나의, 홈>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신성한 가족’의 가장 치부일 수 있는 친족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딛고 생존자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최근 친족성폭력 피해아동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학업을 계속하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경남창원소재 보호시설에 다녀왔다. 고등학생인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엄마를 용서하고 싶어요”라는 희망도 듣게 됐다. 나는 이 아이들의 꿈을 어떻게 실현시켜줄 수 있을까? 어제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사업을 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와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에 다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족성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여성들을 이해하고, 미력이나마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보고서를 잘 작성하는 일이다. 날은 무척 무덥지만 할 일도 많고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더불어 사회적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언설에서 가족관계가 탈정치화돼 활용되는 일도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가정에서도 사라져야 하고 피해자가 낯선 타인이라고 해도, 해서는 안되는 행위가 성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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