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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고 설거지하는 국회의원, 아이를 돌보는 장관,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버리는 검사.


밥하는 노동, 아동·어르신을 돌보는 노동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익숙한 모습인지. 예술분야로 주제를 바꾸어 메탈 밴드의 구성원들이 곡을 쓰고 연주를 하면서 노약자의 병원 가는 일정 등을 생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영화가 상영됐다.


지난주에는 하늘에 떠 있는 노란색 반달과 쏟아질 듯 하늘에 박혀 있는 별빛을 받고 청풍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제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을 관람했다. 개막작은 프랑스 감독인 마르탱 르 갈의 <팝 리뎀션(Pop Redemption)>이다.


팝 리뎀션_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15년 동안 ‘블랙 메탈(black metal)’이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한 프랑스 남성 네 명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 밴드의 이름을 따 ‘블랙 메탈’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악 장르는 과도한 남성성(마초 성향)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일정 부분 여성혐오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인 남성 네 명의 음악세계와 함께 가족생활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남성 네 명은 모두 돌봄친화적이다. 리더인 알렉스는 혼자서 할머니를 돌본다. 꿈의 무대인 메탈 페스티벌 ‘헬페스트’를 떠나기 전 간병인에게 할머니의 식성, 약 주는 시간 등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어린 자녀가 있는 다른 멤버는 “나는 이제 음악하는 것보다 아이를 돌보는 게 더 좋아. 음악 안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도리어 아내가 음악을 관두지 못하게 한다. 중국 여성과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한 멤버는 부인에게 꼼짝 못한다. 리더와 함께 독신인 나머지 한 남성 멤버는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을 띤다. 그렇게도 열망했던 메탈 페스티벌인 ‘헬페스트’에 도착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거친 록을 좋아하고 비틀스로 상징되는 록 음악을 비하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블랙 메탈과 록 음악의 충돌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롭게 공존하며 서로의 존재를 세련되게 빛내주고 있다. 내용이 전환되는 주요 장면마다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 존 레넌, 폴 매카트니, 링고스타의 어록을 제시한다.



리더인 알렉스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도중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비통해한다. 밴드가 살인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에 한 여경찰이 이들을 추격한다. 그녀는 블랙 메탈에 심취해 있는 사춘기 딸을 돌보는 노동과 관련한 갈등이 일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 마지막 공연에는 네 명의 멤버와 돌봄을 주고받는 가족, 여성들도 함께한다. 이 밴드가 무대에서 연주하며 노래하는 곡도 비틀스 곡을 메탈버전으로 노래한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알렉스가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의 묘지 앞에 서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비틀스 노래를 했다면 할머니는 날 두들겨 팼을 거야.”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아이, 여성, 할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이나 비틀스에 대한 존경이 배어 있다.


블랙 메탈과 비틀스 풍의 록, 팝과의 조화·화해·상생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과도한 남성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블랙 메탈 뮤지션들의 여성에 대한 존중과 신뢰,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보살핌, 노동과의 갈등을 보여주는 매우 이색적인 영화였다. 


한여름의 신선놀이처럼 즐겼던 음악영화들의 감동과 함께 무더위도 지나가리라. 그나저나 남성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회의가 시작되기 전 잠시 동안 누드사진이 아니라 요리법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을까?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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