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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이는 거대한 은유일 뿐만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진술이기도 하다.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가 보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완고한 철조망에 드문드문 호제비꽃 혹은 서양민들레가 딱 붙어 피어 있는 것을. 경계병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전혀 주눅 드는 법 없이 나비는 이편저편을 마구잡이로 횡행하고 다니는 것을. 효자동에서 인왕산으로 올라가자면 인간의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식물의 동네는 시작된다. 그 경계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난다. 나의 일천한 관찰에 따르면 가을이면 보라색
닭의장풀, 봄이면 노란색 애기똥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절정은 꽃봉오리인 아기들. 줄기나 잎을 찢으면 아기들의 향기로운 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애기똥풀. 따지고 보면 아기울음 들리는 곳은 전생과 이승의 한 접면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누구나 그 경계를 기적처럼 통과한 뒤 이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흰 기저귀에 노란 똥을 마구마구 묻히며, 더러 닭똥 같은 눈물도
흘리며 자라난다.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대가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이성복) 아이는 부모라는 집에 뚫린 유리창. 부모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창문이 없다면 바깥을 보지 못하듯 아이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던진 돌팔매에 그만
유리창이 깨져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의 통곡 소리가 흘러넘치는 우리 동네. 그러잖아도 아기들의 웃음소리는 끊긴 지 이미
오래인 우리 동네의 시멘트 담벼락에는 죄없는 애기똥풀만 무심하게 피어 있다. 노오랗게 피어 있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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