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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무리의 미국 소방대원을 이끌고 경기도소방학교를 방문했다. 대한민국 소방훈련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종합훈련장 준공을 앞두고 현장을 견학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To Be The Best, Learn From The Best‘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최고로부터 배운다는 경기도소방학교의 모토처럼 이번에 건립된 종합훈련장은 전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규모다.

건축 중인 종합훈련장의 일부 시설을 보고 필리핀 소방국장이 경기도소방학교와의 업무협약 체결의사를 피력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이번에 건립된 종합훈련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독일이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미국의 소방훈련시설 제작업체인 Kidde Fire Trainers가 참여한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종합훈련장은 일반화재훈련장, 공장화재훈련장, 농연검색구조훈련장, 위험물화재훈련장, 중앙통제실, 미로훈련장, 플래쉬오버(Flashover) 및 백드래프트(Backdraft) 훈련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통제실에는 모든 시스템을 안전하게 통제할 컴퓨터와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소방전술을 연구하고 훈련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재난에 강한 소방대원을 양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에 건립된 종합훈련장이 세계 최고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준공을 앞둔 경기도소방학교 종합훈련장 일부.


첫 번째로는 종합훈련장의 설계목적과 훈련시설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Kidde 엔지니어가 수차례 강조한 것처럼 이 훈련시설은 실제 현장과 최대한 유사하게 상황을 재연시켜 소방관들이 현장감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지 훈련시설 자체의 화재진압이 그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설계의 목적을 벗어난 과도한 (혹은 과격한) 사용은 그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으므로 훈련인원 및 훈련시간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활용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전담 시설운영담당관의 배치다. 최소 4명에서 5명이 필요하다. 현재 경기도소방학교의 경우 훈련교관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 이 숫자로 수도 없이 많은 교육수요를 소화해 내고 있다. 교육생을 관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훈련시설까지 담당하는 것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앞으로 훈련을 받을 소방관들의 안전과 훈련시설의 효과적 사용을 위해서 시설을 전담으로 맡아서 운영하는 팀이 반드시 필요하다. 혹시 관리가 소홀해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이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훈련시설로써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훈련시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나니 시설운영과 관리 측면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제법 많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훈련시설의 사령부인 중앙통제실에는 훈련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데, 매일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구동시켜서 각 훈련시설의 안전 상태와 가동여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 필수업무 중 하나다.

또한, 각 시설에 설치된 다양한 밸브 및 센서 점검, 불을 발생시키는 파일럿 버너(Pilot Burner) 상태 점검, 훈련시설 내부의 LPG 누출을 탐지하기 위한 스팬 체크(Span Check)도 매월 실시해야 한다. 아울러 가스탐지기도 정기적으로 영점조정을 해 주어야 하니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종합훈련장의 주연료는 LPG로 매번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화염이 충분히 확산되어 훈련의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일정량의 물을 각각의 훈련시설에 채워주어야 한다. 겨울철에는 동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각의 훈련시설에서 남아 있는 물을 모두 배수시켜 주어야 한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훈련시설의 수명과 효과는 결국 전담 시설팀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훈련이 시작되기 전부터 훈련이 끝난 후까지 각 훈련시설별로 철저한 점검과 관리를 해 주어야만이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각 훈련시설에 소요되는 소모품 및 부품의 확보다. 먼저 훈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연기발생기는 Smoke Fluid라는 액체가 필요하다. 이 액체를 주입해서 연기를 만들어 내는데 지금부터 충분히 재고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수많은 교육생들의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또한, 안전을 위해서 설치된 가스탐지기의 영점조정을 위한 스팬 가스(Span Gas)도 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 이런 제품들은 국내에서 쉽게 구입할 수 없으므로 향후 예측되는 교육수요를 파악해서 충분한 양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훈련의 주연료로 사용되는 LPG도 남아있는 양을 파악해서 필요시 제때에 공급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설치된 종합훈련장의 예상 수명은 약 10년 정도다. 10년이 지난 후에는 지금의 훈련시설 내부시스템을 모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중장기 프로젝트에 포함시켜 예산편성 및 계약 등 제반 상황도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춰서는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 될 것이며, 훈련시설을 사용하면서 단 한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세계최고의 자리는 더 이상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자리다. 이번에 준공될 종합훈련장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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