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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란 직업은 각종 재난현장에 출동해서 초동대응을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급변하는 현장상황과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항상 부상과 순직이라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는 위험직군이다.

세상에 과연 누가 이런 환경 속에서 선뜻 근무하기를 희망하겠는가. 다행히 아직도 세상에는 선한 뜻을 가지고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많은 경험과 노력의 시간이 흘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거듭나면 비로소 그 사람은 지역사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아주 소중한 인적자산이 된다.

4만여명의 소방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우리 국민의 숫자는 어림잡아 1200명이나 된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소방관의 순직은 불행하게도 매년 발생하고 있다. 2014년에만 해도 7명의 소방관이 우리 곁을 떠나갔으니 실로 크나 큰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Fallen Fire Heroes’, 안타깝게 쓰러진 우리의 소방 영웅들을 과연 정부가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유가족들의 건강, 교육 그리고 취업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의 지원방안도 현실을 반영해서 보완되어야 한다. 특히 이런 사안은 각 지자체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챙겨야 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 중에서 2011년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추락해 순직한 한 소방관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당시 해당 소방관이 인명구조가 아닌 대민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이 거부되었다가 3년이 지나서야 우여곡절 끝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사례다.

2014년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제는 공무수행 중 순직한 모든 소방관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고 한다. 그분들에 대한 예우가 늦어도 많이 늦은 것이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그 한 가지 예가 바로 국민안전처의 ‘순직소방관 추모관’ 홈페이지(http://cherish.nfsa.go.kr/)의 정비다.

관리자가 작성한 공지사항은 2013년 6월에 멈춰 서 있다. ‘소방공무원법’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이 개정된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옛날 규정이 버젓이 남아 있어 순직처리기준에 관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장례업무 지원을 담당하는 관련부서의 명칭도 이미 없어진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란 이름 그대로 남아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다보면 정말로 국가가 순직소방관들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110만명이란 소방대원(의용소방대원 포함)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방대원의 순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미연방 소방국(USFA)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순직한 소방대원의 숫자는 무려 106명에 달한다. 2015년에 들어서 현재까지 보고된 순직자 숫자만 해도 24명이나 된다.

그러나 미국은 한 명의 순직소방대원과 그 가족을 위해서 국가, 단체 그리고 개인이 합심해서 진심어린 예우와 보상을 해주고 있다. 바로 이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차원에서는 미연방재난관리청(FEMA)이 매년 10월 순직소방대원 기념주간(National Memorial Weekend)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 행사는 소방대원들의 의로운 희생을 값지게 만들어주고 그들의 가족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매년 수천명이 참석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행사기간 동안에 미국 공법(Public Law) 107-51에 의해 미 연방소속의 모든 건물에서 조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 법무부에서는 일반직 공무원과는 별도로 ‘Public Safety Officers Benefits Program’을 만들어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순직한 소방대원, 경찰관, 응급처치요원 등에게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상을 해 주기도 한다.

한편 1992년 미국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 조직된 국립순직소방대원재단(National Fallen Firefighters Foundation)은 유가족들이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보상프로그램의 혜택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 이 재단은 슬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유가족들을 서로 연결해서 힘든 시간들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유가족들과 순직 소방대원의 동료 그리고 그들이 일했던 소방서를 위한 소중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소방관의 죽음을 단순히 금액으로만 환산할 수는 없다. 우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한 소방관의 죽음은 바로 국가적 손실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전제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숭고한 희생에 걸맞은 예우와 유가족을 향한 진심어린 위로와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순직소방관에 대한 예우와 그 유가족에 대한 보상수준이 바로 그 나라 소방의 현주소다.

앞으로 정부는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을 향해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소방관의 위상도 세워주어야 한다.

다양한 투자와 연구를 통해서 소방관의 부상이나 순직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장비 역시 제때 지급해 주어야 한다. 또한 현장 지휘권의 존중과 현장에서의 소방관의 안전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소방관의 자부심과 명예, 그리고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헌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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