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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똑같은 내용인데 기관마다 판단은 정반대다. 지난주 금요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의 ‘두 번째 부결’을 뒤집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보존이 아닌 개발로 방향을 다시 틀었다. 문화재청이 제 손으로 천연보호구역인 설악산을 유원지로 설계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회원들이 6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국립공원 50주년 행사장 앞에서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 취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무엇 때문에 사업 승인과 불허가 손바닥 뒤집듯 반복되는 걸까. 문화재위원회는 작년 12월 말 동물, 식물, 지질, 경관 등 4개 분야를 검토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불허했다. 사업자인 양양군은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이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올해 6월 ‘보존과 관리 측면에 치중’했고 ‘문화향유권 등의 활용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문화재위원회의 ‘허가 거부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0월 분과회의를 열어 사업을 재검토했고 ‘문화재에 영향이 크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화재청장이 직권으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설악산은 1965년에 천연보호구역,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대략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지자체의 국립공원 이용 욕구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케이블카 사업 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는 1982년 설악산 케이블카 신청 건에 대해 ‘희귀자연과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는 불가’하다고 결정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설악산 케이블카 불가 결정을 내리는데 이 또한 1982년 문화재위원회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양군의 세 번째 시도는 2012년과 2013년의 경우와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전경련,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 양양군이 공모하면서 위기감은 깊었다. 전경련은 2014년 6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와 승마공원을 포함한 산지관광활성화방안을 발표한다. 그해 8월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대통령에게 건의된다. 문체부와 환경부는 양양군이 참여하는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TF’를 주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업 조기 추진’을 직접 지시한다. 양양군은 2015년 4월 사업신청서를 다시 제출하고, 환경부는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그해 8월 7가지 부대조건을 걸고 조건부 승인을 한다. 부정한 권력과 행정, 재벌이 결탁해 설악산 정상의 유원지 계획을 밀어붙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재청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길을 다시 열었다. 문화재위원회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장은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얼마 전 춘천지법은 원주지방환경청 테라스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현수막을 내렸던 활동가에게 벌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양양군청 퇴거 불응과 집시법 위반 재판은 무고한 시민 15명을 피고로 세우며 시작되었다. 앞으로 설악산 케이블카 행정소송도 남았고, 환경영향평가 본안 심의도 남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공원사업 시행 허가, 산림청의 산지 전용 허가도 거쳐야 한다. 깊이 생각해보자.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이면 어떻게 될까. 줄줄이 무너질 것이다.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 전역은 아마도 놀이동산이 될 것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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