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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기묘한 대선이다. 전선은 형성되지 않고 지지자들은 우왕좌왕이다. 이명박 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는 광범위한 불만이 합의되어 있음에도 새누리당이 이슈를 선점하고 주도하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유신 잔당’으로 몰아가려 했던 문재인 후보 측의 선거 전략도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박정희 대 노무현’의 프레임은 참여정부의 공과 문제로 번져서 문 후보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전 후보가 사퇴하긴 했지만, 그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문 후보가 부동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말을 아낄수록 주변의 관심을 더 끌었던 출마선언 이전의 효과를 안 전 후보는 다시 누리고 있다. 무대에서 내려갔다고 해서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유는 명백하다. 지속적으로 지적했지만,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바로 기성정치인에 대한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것을 ‘반정치’라고 정의하기도 했지만, 사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다른 정치의 모습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안철수라는 개인을 정몽준 또는 문국현의 반복으로 쉽게 단정했던 이들이 얼마나 오판을 한 것인지 상황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안철수 현상은 분명히 실체가 있었고, 이 문제는 우리에게 정당정치로 수렴할 수 없는 다른 정치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야권의 정치혁신은 바로 다른 정치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하진 않다는 사실이 지난 단일화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은 선거철만 되면 단일화를 단골 메뉴로 거론했으니, 2012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문제는 이런 단일화가 일정하게 현실성을 구성하는 판타지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단일화를 위해 선거를 하는 것 같은 전도현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 논란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야권 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일정하게 겹치면서도 달랐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 지지층 중에는 새누리당 못지않게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주당도 ‘기득권’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립은 정당정치 대 시민정치라는 가상의 전선을 상징했다. 둘 다 야권 후보이고 정책도 대동소이했지만, 안 전 후보의 정치자산은 문 후보의 것과 사뭇 다른 양태를 띠었다고 하겠다. 이런 까닭에 야권 후보들의 단일화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승리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 캠프 현수막 철거 (출처: 경향DB)


이번에 확인했듯이, 단일화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규정해왔던 양당 구도로 인해 빚어진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세력이 일정하게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당시에, 선거 전략으로서 단일화는 정치적 공간을 개방하는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 세력은 서서히 우경화했고, 이 과정에서 정당정치를 대표했던 양당은 정체성이 어슷비슷해지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걸핏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단일화 논리는 양당 구도에서 민주화 세력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어 왔기에 이번처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표출되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을 수용할 수 없는 한계를 노출했다. 


과거 같으면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대동단결할 수 있었을 야권 지지층이 더 이상 뜻을 합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세대격차로 인해 과거처럼 균질한 계급이 형성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30대가 바라는 정치전망을 기성정당은 제대로 제시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현상이 사실은 기성정치의 위기를 암시하는 것이지만, 정작 그 위기를 새로운 전기로 삼았어야 할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만을 외칠 뿐, 그 안에 담겨야 할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역사적으로 위기와 변화는 보수에게 불편한 것이었지만, 진보에게 새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예상과 달리, 20~30대가 오히려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문제가 유권자들에게 있다기보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성정치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유권자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새 정치’라고 한다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고민해서 제시하는 것은 기성정치인들에게 맡겨진 역할분담이다. 


이번 대선의 화두가 새것과 낡은 것의 대결임에도, 야권 후보들이 박 후보에 비해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든다. 한때 새것이었다고 해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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