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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18대 대선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종결되었다. 결과를 놓고 여러 말들이 오갔지만, 문제는 민주당의 전략 부재였다. 유권자들은 냉정한 투표를 했다는 생각이다. 강고한 지역구도와 인구비율을 언급하면서 패배의 필연성을 강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핑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민주당의 행태는 흡사 시험출제 경향이 바뀌었음에도 낡은 참고서를 고집하는 수험생처럼 보였다. 당연히 시험 성적이 좋게 나올 수 없었다. 유권자들은 차후에 닥쳐올 다양한 위기들을 고민하면서 가장 좋은 대책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했는데, 민주당만 ‘정의’라는 윤리적 가치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분노해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오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니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성찰을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꼴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자유주의의 미덕을 강화해야 할 당사자들이 당권 경쟁에 몰입해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민주당은 존립근거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당선 확실, 답답한 민주당 (경향신문DB)


이번 선거는 진보 대 보수나 호남 대 영남 중에 택일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차 강조했지만, 유권자들은 두 개의 보수주의 중에서 하나에 낙점을 주었을 뿐이다. 진보정당들이 무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가치 경쟁은 결국 어느 쪽이 더 훌륭한 보수주의인지를 결정하는 사안이었다. 여기에서 유권자들 대다수는 ‘정의로운 사회’보다 ‘잘사는 사회’를 선택했다.


박근혜 후보를 당선인으로 만들어준 유권자들이 상상하는 ‘잘사는 사회’는 모두가 공평하게 일자리는 나눠 갖는 ‘정의로운 사회’와 사뭇 다른 것이다. 전자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대접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후자는 누구라도 그 능력을 갖출 수 있게 공평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겉으로 모두 경제민주화를 표방하고 양극화 해소에 합의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각자 달랐던 셈이다.


50대가 스윙보터 역할을 하면서 판세를 좌우하게 된 것도 유권자들이 ‘이성’의 투표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판단하기에 민주당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 집값 상승을 비롯해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힌 주역들이다. 촛불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강남좌파’들이 민주당에 선뜻 표를 주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내가 만난 한 ‘강남좌파’는 심정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과거 종부세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투표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종부세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퇴직을 앞둔 자신의 처지에서 생활에 위협을 주는 세금 문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것은 냉철한 현실원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닥쳐올 경제위기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음은 물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박정희 향수에 사로잡혀 자신의 계급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해버린 ‘우매한 대중’으로 질타하는 것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50대는 누구보다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는 세대이다. 한때 참여정부의 산파 노릇을 했던 이들은 경제문제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췄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이들의 선택이 과연 맹목적이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 18대 대선은 이미 결판이 난 상태였다. 민주당은 새롭게 변화한 유권자들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진영논리에 편승하기에 급급했다는 판단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나머지 산술적 계산 이상의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은 2007년부터 보수지배의 사회로 진입했다. 이번 대선에서 20~30대가 보여준 높은 투표율은 이념지향이었다기보다 가치지향이었다. 진영논리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양극화가 발생하는 까닭은 고용문제 때문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이들과 불안한 일자리를 가진 이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양극화의 실체인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양극화의 현실에서 새누리당은 아무래도 기득권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20~30대에게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해서 펼칠 정책 여부에 따라 20~30대도 얼마든지 민주당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멘붕’에 빠지는 것이 사치일 정도로 현실은 너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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