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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문화평론가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야권연대를 명분으로 ‘통합’했던 정당이 그 연대의 토대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말만 통합이었지 사실은 동상이몽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쏟아져 나온 진단들을 보면, 오히려 보수언론들이 문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주사파’의 문제점을 지목하면서 진보주의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문까지 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이른바 진보진영은 예의 ‘조·중·동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당권파’에 대한 온정주의적인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중앙위원과 당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NB



 게다가 이 혼란의 와중에도 왜 ‘당권파’가 이런 사태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다양한 인터뷰를 활용해서 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는 간단했다. 당내 부정경선을 조사한 위원회가 악의적으로 ‘당권파’의 행위를 선거부정이라고 단정했다는 것이다. 관행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실을 의도적인 부정으로 매도했다는 항변이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당권파’의 정치적 노선을 문제 삼는 것은 보수언론의 색깔론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이기도 한다.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당권파’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의 자리에 대한 개인의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보수언론에서 넌지시 암시하는 것처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친북좌파’의 맹목 때문일까? 두 가지 추측 모두 지금 당장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궁금증을 제기한 이들 몫으로 남겨두고, 제3의 관점을 채택해볼 수 있겠다. ‘당권파’라는 특정한 정치노선을 추진하는 정치집단과 진보정당이라는 ‘대중노선’이 충돌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관점 말이다.


여기에서 ‘대중노선’이라는 것은 1980년대 이래로 한국에서 일정하게 성취되어온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해도, 이것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전체 구성원을 위해, 또는 사회적 약소자들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합의가 여기에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진보정당은 진성당원제를 근간으로 삼는 대중정당을 표방하는 것이 타당한 전략인 것이다. 진보의 내용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정당이 되는 것이 이런 대중정당의 목적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당권파’가 보인 태도는 이런 ‘대중노선’에 상당히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정희 전 공동대표는 중앙위 회의에서 비례대표 사퇴를 원하는 ‘유권자의 뜻’에 반해 당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의사진행을 거부했고, 급기야 이 전 대표가 옹호한 그 당원들은 중앙위 결정을 폭력으로 저지하는 추태를 연출했다. 결과가 이렇게 되었음에도 이석기 당선자는 한 인터뷰에서 의사결정을 강제로 진행한 ‘비당권파’에게 책임을 돌렸다. 말하자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정파의 구성원들이지, 통합진보당이라는 대중정당 자체가 아닌 것이다.


이 문제는 특정인이나 특정 정파의 권력욕이라기보다 노선이 세계관을 규정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정당으로서 통합진보당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이른바 ‘당권파’에게 없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은 온갖 고난에도 진보정당을 지켜온 당원들을 갑자기 나타난 국민참여당 계열이 비리의 주범으로 내몰고 있다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기만의 열쇠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범하는 우를 이런 논리에서 쉽게 읽을 수가 있다.


결국 이런 논리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당원의 정당이지, 국민의 정당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지율을 희생하더라도 당권파의 비례대표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 의석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보통합과 야권연대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요구를 재현하는 장치로서 존속하는 정당정치의 원리와 불화한다.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당원총투표’를 들고 나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에서 어렵지 않게 정당에 대한 이들의 관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은 이들에게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당원이라는 존재들도 국민 일반과 다른 차원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특정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특정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이들에게 진보인 셈이다. 문제를 따지자면,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다고 하겠다. 진보진영 전체를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보정당은 ‘우리만의 것’이라는 발상과 화폐를 자기 재산으로 착각하는 수전노의 욕심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착잡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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