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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지난 총선 결과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차려준 상도 못 받아먹었다는 민주통합당 뿐만 아니라, 어렵사리 과반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도 승리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의 의석이 늘어난 것을 가지고 쉽사리 진보의 약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넘쳐흘렀지만, 투표율은 54%에 그치고 말았다. 46%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침묵’으로 자기 의사표시를 했다. 명사들이 벌인 온갖 투표 독려 캠페인도 의미가 없었다. 


 ‘2002년 어게인’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투표율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투표율이 바로 70.8%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을 만든 원인 중 하나가 50%를 훌쩍 넘긴 20대 투표율이었다. 총선이 끝난 뒤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아서 민주당이 패배했다”는 주장이 트위터에 떠돈 까닭이다. 이런 발언은 역설적으로 ‘20대 투표 독려’라는 것이 어떤 욕망을 감추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20년간 총선 투표율 (경향신문DB)



20대가 권리를 지키려면 열심히 투표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정작 그 20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순식간에 모든 실패의 책임을 전가해버리려는 태도가 ‘어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한국 선거에서 ‘계급투표’ 양상을 보였다는 것은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다.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강남 투표율은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야말로 정당정치라는 ‘재현’의 제도에서 점차 소수약자의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남 부유층이 일심단결해서 조직투표를 하고, 거기에 대항할 만한 집단들이 붕괴해버린 것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계급투표’의 실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거 노무현 정부 탄생의 주역이었던 그 유권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만 돌아왔더라도 이번 총선은 누구 말대로 야권의 ‘대박흥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70% 투표율을 채워주지 않은 16%의 유권자들이야말로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불안한 삶’으로 전락해버린 존재들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쫄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고용을 쥐고 있는 사장에게 쫄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 이 16%에 포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출근시간을 쪼개 투표를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의 투표의지를 꺾어놓았던 ‘반성 없는 민주당’의 무능함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정권 심판이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표장에 가려는 이들에게 이명박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삶을 힘들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심판을 받아야 할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을 심판하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 것인지는 자명하다. <나꼼수> 열풍에 힘입어 정치에 눈떴다는 ‘새로운’ 지지층은 위기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었고, 이명박 정부라는 ‘병균’을 제거하면 무균질의 정치가 당장 만들어질 것처럼 믿고 있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투표율이 54%밖에 이르지 못한 것은 ‘국민’의 의식 수준 때문이라기보다, 더 이상 보수 정당정치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무엇인가? 지금 대한문 앞에서 분향소를 차려놓고 죽어간 동료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들어내고, 역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추운 겨울 내내 길고 긴 농성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만든 변화이다.


노동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높게 만들어버린 변화이다. 이 변화를 주도한 당사자들은 다시 권력을 주면 한·미 FTA를 재협상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재고하겠다는 이들이다. 말로는 진보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진보를 떠받쳤던 토대들을 경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 망가뜨려 갔던 장본인들인 것이다. 이들이 여당도 되기 전에 벌써 권력 나눠먹기 담합을 자행하고 여당 못지않게 공허한 이미지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동안 정당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 위기의 원인이 노동 유연화와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형식에 따른 유동성의 강화에 있다는 사실은 별반 거론되지 않았다.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근본문제를 제기했던 시민사회는 보수화하고,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조적으로 부유층은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공간에 서로 모여 살며 집단행동에 용이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보수 일색의 정당정치를 통한 정치적 반전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걱정한다면, 눈에 보이는 표만 의식할 것이 아니라, 표로 나타나지 않은 46%에게 목소리를 줄 수 있는 대책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변화한 정치조건에 대한 성찰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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