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애써 옹호해 주던 이들을 무색하게 만든 인사청문회였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말이다. 익숙한 풍경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선거에서 변화와 쇄신을 최대 화두로 삼았던 정치인들의 다짐이 뇌리에서 사라지기도 전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야심차게 과거를 털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차기 정부에 심각한 이미지 손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새로운 정부는 출범하기도 전에 과거 5년 동안 불통의 이미지를 남겼던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게다가 이 후보자의 인선은 대통령과 당선인의 공조를 화기애애하게 내세웠던 첫 번째 ‘업적’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수언론까지 나서서 이 후보자 인선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후보자의 헌재소장 취임은 어려울 것처럼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정작 이 후보자나 그를 옹호하고 나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억울하다’는 심정을 직간접적으로 계속 표출해왔다. 이런 상황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관행’이었다는 표현도 이 후보자 지명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논리로 수차례 오르내렸다. 이 후보자가 저지른 특정업무경비 유용은 의도적인 비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논리도 그 문제의 경비를 개인 계좌로 이체시켜 부당한 이득을 보았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게 돼버렸다.


많은 이들이 뻔뻔한 이 후보자의 행태에 대해 혀를 찼지만, 과연 이 문제를 쉽게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시켜서 ‘나쁜 놈’ 하나 만드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인사청문회가 열렸고, 문제 있는 후보자가 지명돼서 갑론을박을 펼칠 때면 으레 나왔던 것이 ‘관행’이었다는 말이다. 그때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서 그랬는데 ‘억울하다’는 변명도 다반사였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음에도 왜 비슷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다는 생각이다. 흥미롭게도 쭉 훑어보면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들이 대체로 가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출장을 핑계로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군복무 중인 아들과 유학 중인 딸이 특혜를 받도록 지원했다는 혐의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자가 굳이 헌재소장으로 지명되지 않았다면 이런 의혹들은 말 그대로 ‘관행’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업무경비를 과도하지 않은 범위에서 사사로이 유용하는 일은 한국이라면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일상다반사이다. 아마도 “특정업무경비를 콩나물 사는 데 쓰는 일”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 후보자를 옹호했던 여당 의원들의 논리도 이런 엄연한 현실에서 정당성을 확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인 송금내역이 드러나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정할 수 없는 가시적인 증거가 나타나야 잘못을 인정하는 것,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발각되기 전까지 오리발을 내밀다가 부정할 수 없는 가시적인 증거가 나타나면 일순간에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어슷비슷한 사태에서 되풀이되는 진짜 ‘관행’인 셈이다. 이 후보자는 공직자의 측면에서 용납하기 힘든 비리를 저지른 파렴치한이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버지다. 그 힘든 군 생활도 편하게 하도록 도와주고, 그 어렵다는 취업도 쉽게 해결해주는 능력 있는 아버지인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능력자야말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꿈꾸는 이상적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 후보자가 억울하다는 심정을 밝혔을 때, 이런 생각이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헌법재판관이라는 공적인 지위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한 혜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발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공직을 입신출세의 길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공직자가 되는 순간, 공적인 의무감보다도 사적인 성취감이 개인을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태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이동흡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특정한 개인이 잘못해서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언제까지나 ‘관행’이었다고 똑같은 소리나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이런 문제의식을 공직자가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검증 제도의 정비도 필수적이다. 이 후보자 같은 이가 공직자로서 ‘결격사유’를 가졌다는 사실을 굳이 외부에서 지적하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걸러낼 수 있는 자체 검증의 분위기가 진정한 ‘관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