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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혁명가’의 생애는 이렇게 저물었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혔지만, 나에게 카스트로는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과 함께한다. 여전히 반공주의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상징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사실에 대해 국제사회는 논란에 빠져 있었다. 광주의 민주화 요구를 총칼로 진압하고 집권한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고자 이들은 1983년부터 상계동을 비롯해서 오금동, 암사동, 신정동에 있던 서울의 ‘달동네들’을 ‘도시 미화’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철거했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쫓겨난 이들은 ‘도시 난민’이 되어서 고속도로변에 가건물을 짓고 목숨을 겨우 이어가야 했다. 군부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만 이야기해도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과 중국은 올림픽 참가를 공식화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카스트로는 올림픽조직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내 쿠바의 올림픽 불참을 알리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카스트로의 서신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울올림픽 아카이브에서 읽을 수 있는데, 놀랍게도 카스트로는 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과 올림픽을 빌미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철거를 지적하면서 이런 나라에서 행사를 개최한다면 올림픽 본래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쿠바 아바나대학 학생들이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26일(현지시간) 캠퍼스 내 추모소에서 애도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아바나 _ AP연합뉴스

물론 그 시절 전두환 정권은 이런 쿠바의 결정을 “북한의 사주” 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는 카스트로의 서신은 ‘공산주의 국가’ 쿠바에 대한 편견을 흔들어놓는 것이다. 카스트로가 표명한 입장은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올림픽을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산에 이용하려 했던 이들에 대항해 제3세계 국가들의 연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신이 제기한 연대는 오늘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세계는 카스트로의 입장과 반대로 움직여왔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1980년대에 주목했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6년 한국은 여전히 민주화 운동 중이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은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외치는 ‘민주시민들’로 가득 찬다. ‘광야에서’가 울려 퍼지는 광장은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규모와 양상에서 비교 불가하지만, 정서는 반복적이라는 생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반복의 정서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카스트로가 언급했던 그 1980년대이다. 1980년대는 한국에서 급진주의의 절정기였다. 광주의 경험은 이른바 ‘운동권들’에게 객관적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이론’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한계는 컸지만 ‘사회구성체 논쟁’은 이런 맥락에서 튀어나온 지적 시도였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이들 중 상당수는 1980년대를 통과했을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이들에게 익숙한 노래들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가요’이겠지만,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은 ‘인기 가수들’이 부르는 ‘사회의식’을 갖춘 노래들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 중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상’을 불러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199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재현하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부르면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변화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대중문화가 특정한 ‘운동권 문화’를 대체하면서 민주주의의 이념이 무한한 확장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치 아베 정권이 안보법 개정을 예고했을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일본 청소년들이 힙합을 부르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주장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지점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일렁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확고하게 ‘자유민주주의’로 수렴한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는 문제에 발본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급진주의를 선제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합법적 평화시위’를 규범화해서 강제하는 일부의 태도는 이런 급진주의에 대한 적대 내지는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최근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극우화의 원인으로 이런 급진주의의 소멸을 꼽고 있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던 급진주의는 허울 좋은 ‘소비자주의’를 통해 적대시되고 거부되었다.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든 글로벌 자본주의라고 부르든 이 양상이 초래한 불평등은 허무주의적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 결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청와대에 계신 ‘그 분’이야말로 1980년대의 급진주의가 보수주의에 밀려나면서 벌어진 참사가 아닐까. ‘그 분’을 청와대로 보냈던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1970년대 같은 ‘정경유착’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도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그들에게도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민주주의는 일단 가동되는 순간 멈출 수 없는 엔진이다. 생전 카스트로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무엇을 보았든, 이제 민주화 운동은 하나의 기호로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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