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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박근혜 대세론을 둘러싼 말들이 무성하다. 새해 들어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여전히 부동

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그에 대한 지지율은 다른 대권 예비후보들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각에서 여론조사에 끼인 거품을 지적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아니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 이외에 뚜렷하게 부각되는 인물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쏠림현상일 뿐이라는 평가다. 또한 박 전 대표가 이미지 정치로 덕을 본 경우라서 현재의 지지율 이상을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외에도 과거 이회창 대세론에 빗대어서 박근혜 대세론도 종국에 가서 제 발등을 제가 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험론’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나름대로 개연성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짚어 봐야할 것 같다. 왜 박근혜 대세론이 득세하는 것인지, 근본 원인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일시적 거품현상이라기보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당면한 위기를 보여주는 구조적인 징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라는 기표이지 ‘정치인’ 박근혜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정견이 아니다.



박근혜 대세론을 떠받치는 원동력은 바로 박 전 대표가 정치인처럼 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박근혜라는 존재는 마치 화폐의 기능처럼 상징적인 교환의 매개일 뿐이다. 이렇게 박근혜라는 기표는 사회 구성원에게 항상 불만의 대상으로 재현되는 국가의 대체물로 나타난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은 박근혜라는 기표가 점하고 있는 이 지점을 한때는 이명박이라는 기표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국민 대다수가 국회를 대의기구로 생각하지 않고 대통령을 ‘자기 편’이라고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국회에 모여 있는 이들은 민의를 대변하는 의원이라기보다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중성적 존재’로 국민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 대 대통령이라는 구도는 민주화 이후 목격할 수 있는 정치영역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 직선제는 강력한 대통령제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박근혜 대세론을 돌아본다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박 전 대표의 단점으로 곧잘 거론되는 쟁점현안에 대한 침묵, 계파 정치인과의 불통, 그리고 실질적인 정책 내용의 부재야말로 오히려 그의 대세론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박근혜 대세론은 바로 중성적이었던 박 전 대표의 특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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