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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 비싼 걸 해야 되나? 장모님 될 분이 고민한대요.”

“그런 거 하지 말자 그래.”

말해 놓고 생각해 보니 ‘예물이 뭐지?’ 하고 궁금했다. 옛날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안 했고, 자식 혼사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치르는지라 예물을 주고받는 걸 알 턱이 없다.

‘예물이 뭘까?’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예물은 결혼반지 같은 패물을 뜻하고 예단은 이불 같은 현물 또는 현금이라고 한다. 본래 예단은 신랑 측에서 신부 측으로 비단을 보내면 신부가 그 비단 천으로 손수 바느질해 시부모 옷을 지어 보내는 것이었다. 옛날엔 옷을 직접 지어 입어야 했기 때문에 여자들의 바느질 솜씨가 중요했다. 며느릿감의 바느질 솜씨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데서 유래한 풍습이었다. 그러면 시부모는 수공비를 신부에게 보냈다. 그것이 요즘 신부 측에서 신랑 측으로 돈을 보내고 그 돈에서 얼마를 돌려주는 요상한 풍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게다가 신부 ‘꾸밈비’니 ‘예단 삼총사’니 별걸 다 만들어 놨다. 한 번도 안 쓰는 침구, 그릇, 수저 세트가 집 안에 쌓여 있는데도 대체 왜 이런 걸 주고받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예단비를 주고받을 때 사람들은 참 고민되겠다. “저희 집은 돈이 없어서 1000만원만 드릴게요” 하고 제안하면 남자 집에서 “그럼 500만원 돌려 드릴게요” 하나? 아니면 “저희가 반지 50만원짜리 할게요, 그쪽은 시계 50만원짜리 하세요.” 뭐 이렇게 약속하나? 이해할 수 없다. 고대 로마에서 유래된 반지 교환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살다 보면 어차피 장롱에 처박히거나 잃어버릴 텐데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가락지’ 하나 사면 된다.

다이아몬드 결혼 예물. 경향DB

결혼할 아들은 서른세 살이다. 나는 다 큰 젊은이가 집에서 엄마 시중을 받는 게 늘 눈에 거슬렸다. 결혼하거나, 혼자 살아도 좋으니 독립을 해서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년 봄에 결혼을 한다니 속이 시원하다.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아들은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밥 받아먹으면서 설거지도 안 하고, 빨래해서 다리미질해 준 옷 입고, 방 청소 해주는 데서 잠만 자던 ‘늙은 철부지’였다(왜 엄마들은 다 큰 아들을 품안의 자식처럼 껴안고 시중을 들까). 결혼해서도 여자에게 그런 시중을 받으려고 할까봐 걱정됐다.

여자 집에서도 걱정할 거다. 직장은 잘 다닐지, 남자가 공평하게 집안일은 나눠서 할지, 아이를 낳으면 육아를 딸한테만 맡기지 않고 같이 할지, 집에 형광등이 안 들어오면 금방 갈아 주고, 하수구나 변기가 막히면 맥가이버같이 금방 뚫어줄 수 있는지 걱정될 거다.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처음 집에 온 날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쓴 책을 한 권 선물하면서 사인을 하다가 물었다. “결혼할 거야? 결혼하면 ‘며느리에게’라고 쓰고.” 그녀가 당돌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써 주시면 결혼할게요.” 나는 소파에서 굴러떨어질 뻔하다가 ‘며느리에게’라고 써 줬다.

그리고 서너 달이 지났다. 지난 5월8일 어버이날, 장래 며느리가 찾아왔다. 장래 시아버지한테 줄 선물이라고 건강식품 박스를 내밀었다. 뭔 ‘아로니아?’ 나는 본래 건강식품을 먹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어릴 때 봤던 우리 땅에서 난 식물이 아닌, 외래종 식물을 잘 믿지 않는다(특히 미국산은 거의 GMO 식품이라고 의심한다). 그래도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먹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내가 선물한 책은 읽었니?” “아니요. 아직…. 시간이 없어서요.” 참 당당(?)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책을 읽어 주는 것이 건강식품 선물보다 백 배 좋은 선물이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안 읽었단다.

나는 예물 예단도 그런 선물과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로니아 건강식품’처럼 별로 쓸모없는 예물이 아니라, 사인까지 해 준 책을 읽어주는, 남을 배려하고 자기한테도 도움 되는 ‘예물’이면 좋겠다. 예물 예단보다 책 한 권 읽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할 일이다. 상견례 때도 내가 선물한 책을 안 읽었다고 하면? ‘난 이 결혼 반댈세!’

안건모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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