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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잎이 속절없이 떨어지던 날, 온 가족들의 돌봄 속에 즐거운 추억을 나누시던 장모님이 우리 집에서 하늘길로 떠났다.

지난달 농번기로 한창 바쁜 시골 막내처남 집에서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를 딸들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막내딸 집으로 모시게 됐다.

한 외국잡지에서 “의사들은 우리처럼 죽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 나름 느낀 바가 컸던 참이었다. 불치의 병을 선고받을 때 일반인들과는 달리 의사들은 얼마나 치료를 많이 받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받는가를 선택한다고 한다. 평생 병마와 싸우는 것이 그들의 일인데도 죽음 앞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선택들이 가능한지 잘 알기에 첨단 과학에 의지하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자기 삶을 살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서적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 표지 (출처 : 경향DB)


‘웰 다잉’과 ‘엔딩노트’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역시 어머니가 마지막을 약품 냄새 진동하는 병실에서 쓸쓸하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환자용 침대와 휠체어, 용변세트까지 집에 갖췄다.

장모님은 막내딸 집에서 “환한 거실에 있으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우리 집은 모처럼 가족들이 찾아와 북적대니 사람 사는 분위기여서 좋았다. 사람이란 참 어리석다. 그렇게 건강하고 왕성했던 날들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가 조르주 무스타키의 ‘너무 늦었어!’라는 노랫말처럼 늦은 석양이 돼서야 반응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재담이 딱 떨어진다.

고향 안방을 다시 보고 싶다 하셨다. 봄꽃보다 예쁜 고운 단풍도 ‘낙엽귀근(落葉歸根)’일진대 사람 가는 그 길을 어찌할 것인가. ‘모멘토 모리’(Momento mori).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에는 역설적이게도 오늘을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있다. 장모님을 고향땅에 모시고 나서 말없이 다짐했다.

“영면하소서, 우린 오직 눈물 나게 살려오!(Live to the point of tears!)”


황용필 | 체육진흥공단 중랑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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