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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나는 네덜란드의 레이덴 대학에서 열리는 국제 비교문학대회에 참석하였다. 학회에 참석하는 일에서 틈을 내어 나는 데카르트가 머물렀던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17세기에 현대 서양철학을 새로 시작하게 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는 레이덴에 거주한 일이 있었다. 그는 사유의 실험으로서의 철학을 시작한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여행을 통하여 쌓은 인생 경험도 적지 않았다. 독일에 있었던 전쟁에 참가한 이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철학, 수학, 천문학 등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기 시작하였다.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원한 것은 인간의 여러 지식들을 논리나 수학으로 묶어 통일 과학을 고안해내는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이러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으나 30세를 조금 넘긴 다음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20여년을 그곳에 거주하면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아니하였다. 그가 파리를 떠난 동기는 분명치 않다. 그가 남긴 편지 등에서 미루어 그의 이주 결심은 명성과 더불어 번거로워지는 사회생활, 인간관계를 떠나, 조용하게 학문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자 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달리는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공감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연구가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이주하였다고도 한다. 


지금은 그 이유도 거의 잊어버렸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데카르트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덴에서 그가 머물렀던 동네와 집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수소문을 해본 결과 그가 살고 있었던 곳은 라펜불그 가이고 번지는 21번지라고 하였다. 라펜불그 운하 옆 길을 따라 걸어 가다가 찾은 집은 평범한 연립주택 비슷한 빌딩이었는데, 입구에 “1640년 데카르트 거주지”라는 놋쇠 표가 붙어 있었다. 거리와 주소도 그렇지만, 그것은, 레이덴 시의 건물들이 그렇듯이 17세기로부터 계속 유지되어 온 집이었을 것으로 보였다. 데카르트는 이사를 자주하여 이 라펜불그의 집에서도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럽 도시 이미지(출처 :경향DB)


그런데 여기에서 데카르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철학자로서 그를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도시와 거리와 주소가 지금도 알아볼 수 있게 남아 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2005년에 데카르트의 전기를 쓴 한 저자는 자기가 찾았던 데카르트의 거주지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 곳을 들어보자면, 그가 전기를 쓰기 위하여 파리에서 세 들었던 아파트는 불튀부르 가의 1629년에 지은 빌딩 안에 있었는데, 데카르트는 그곳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에쿠프 가의 비슷한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쓰고 있다.


이런 것들을 다시 회상하는 것은 이번에 전국적으로 도로명과 주소를 고치겠다는 특이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이제 그것이 시행된다고 하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시행하려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한 설명은 이미 나왔을 성싶다. 그러나 설명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앉아서 궁리해서는, 경비만 따져도왜 해야 하는지 짐작을 할 수 없는 것이 이 일이다. 발상은 아마 우리의 도로명이나 번지수가 불합리하다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명 또는 동네 이름이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번지 순서가 일정치 않은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은 합리적인가? 합리적이라 찾기가 쉬울 것인가?


도로명주소 표지판(출처 :경향DB)


사람의 이름을 포함하여 모든 이름은 불합리하다. 그렇다고 우리 이름을 군번처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일까? 이름은 기억하여야 하고 기억을 통해서 구체적인 것들을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독특한 사건들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기억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이름에 - 사람의 이름이나 지역의 이름이나 - - 구체성을 부여한다. 집단만이 아니라 개인도 기억의 연쇄 속에서 정체성을 갖는다. 기억은 자기가 살던 동네를 포함한다. 위에 말한 레이덴의 거리나 파리의 거리도 그렇고 그 이름도 역사의 일부이다. 그것은 데카르트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유명 무명에 관계없이 거리는 기억과 추억과 역사의 일부이다.


길거리로서 가장 합리적인 원리에 가까운 것은 미국의 많은 도시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소변경을 기획한 사람들은 미국 도시와 같은 것을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가령 뉴욕처럼 길거리나 번지수가 일관된 숫자로 되어 있고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한 도로의 도시는 달리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의 길거리에 대하여 기이한 논평을 한 일이 있다. 조금만 가면 벽에 부딪히는 듯한 유럽 도시의 길거리에 비하여 미국 도시의 길들은 일직선으로 똑바르고 곧장 고속도로로 연속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때문에 미국의 도시들은 가(假)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미국의 바둑판 길들은 미국의 자유의 상징이다. 그 자유란 함께하는 사회를 두고 대결하고 토의하고 협의하는 자유가 아니라 빠져 나갈 수 있는 자유이다. 미셸 푸코는 만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소감을 말한 일이 있다. 동성애자인 푸코는 사르트르가 말한 바와 같이 막힌 사회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넓은 대륙의 자유를 생각한 것일 것이다.


벽에 막힌 길거리의 도시와 탁 트여 있는 합리적 도시 - 어느 쪽이 좋다고 골라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인간사가 그렇듯이 적절한 조화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의 도시는 다 같이 역사의 소산이다. 우리가 쓰는 동(洞)이란 동굴, 골짜기, 골과 같은 공간을 말한다. 영어의 ‘스트리트(street)’, 프랑스의 ‘뤼(rue)’는 길의 뜻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바로 ‘도로명’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만, 거기에 많이 나오는 “길”이나 “로”도 고을이 아니라 도로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이것이 반드시 일직선의 도로에 따른 지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일이 있다. 집을 나와서 대학으로 가자면, 꾸불꾸불하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간다. 이 길의 이름은 수 차례 바뀐다. 가령, 같은 길인데도, 세인트 존스 대학 옆은 세인트 존스 스트리트, 트리니티 대학 옆은 트리니티 스트리트, 킹스 대학 옆은 킹스 파레이드이다. 이것은 이러한 대학들이 유명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는 곳에 대한 체험이, 우리나 마찬가지로 직선이 아니라 공간이었다는 사실로 인한 것일 것이다.


영국을 말하자면, 영국은 역사를 존중하는 나라 - 어떤 때는 역사의 불합리한 타성에 매어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제일 알려진 교수의 하나는 스티븐 호킹 교수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에 은퇴한 그의 교수직 이름은 루카스 수학 교수(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였다. 17세기에 뉴턴도 같은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전문분야는 물리학이다. 물리학이 수학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뉴턴에서 호킹에 이르는 사이에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다른 학문의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수직의 이름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학장 명이나 정부 부처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는 영어의 철자법도 그에 비슷하게 국가에서 간여하지 않고 놓아두어도 저절로 관용이 성립하고 그것이 정서법으로 정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을 바꾸면 사실을 바꾼 것에 못지않게 큰일을 한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 - 유명한 소설의 제목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 - 말에, “이름이 무엇이란 말인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그 향기가 다를 것인가?”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우리는 “장미는 의미 없는 음절의 조합이다, 그러나 기억과 연상의 누적이 장미를 사실이 되게 한다 - 이러한 말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서 이름이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름과 하나가 됨으로써, 이름은 사실의 무게를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사후약방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이왕에 그렇게 되었으니 주소로 옛것과 새것을 병용하는 것은 어떨까? 주소는 다시 말하여 사람의 고유한 이름과 같다. 아마 그 누적된 연관을 다 고쳐 나가는 것은 한이 없는 작업일 것이다. 주민등록도 그렇고, 토지대장도 그렇고, 외국과의 연락도 여기에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에 연결된 GPS의 데이터베이스도 그렇다. (오늘과 같이 국제관계가 얽혀 있는 세상에서 주소를 고치는 것은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또는 지구적 문제이다.) 보도되고 있는 여러 어려움만 보아도, 재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한다. 오래된 이름을 마음대로 고치면, 잃는 것은 많아도, 생기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건전한 관점일 것이다.


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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