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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대한민국의 체육정책을 총괄하여 공적 책무와 공적 헌신을 해야 하는 엄중한 자리다. 현재 최윤희 차관이 맡고 있다. 작년 12월19일 임명되었으니 정확히 7개월이 흘렀다. 한두 달이면 모르되 반 년 이상 흘렀으니 무거운 질문을 던져도 될 듯싶다.

그사이, 국가의 체육정책은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고 그 문화는 활기차게 증진되었는가. 요컨대 최윤희 차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책무에 헌신하였는가.

글쎄, 확연히 그러하다며 격려하기 어렵다. 물론 획기적인 정책이 제안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설득하여 현실화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므로 섣불리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7개월이라면 충분히 그 가능성을 타진할 만하다.

최윤희 차관은 작년 말 중책을 맡으면서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심각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이 짧은 문장에 한국 체육정책의 폐습이 녹아 있고 또한 여전히 작동하는 폐단이 스며 있어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겠다는 우려였다.

왜 그러한가. 우선 ‘체육인의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자. 문체부 제2차관, 즉 일국의 체육정책과 그 문화를 총괄하는 자리는 ‘체육계’만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 삶의 경로와 그 일의 경험에 의하여 그 분야의 인사가 발탁되는 것이 고위공직 임명의 일반적인 수순이지만, 국토교통부 장관이 운송업계를 대변하지 않듯이, 국가의 고위공직이 특정 분야를 대변하는 자리는 아니다.

‘체육인의 한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는 비체육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체육인’에는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국가대표 및 그에 준하는 전문 선수만이 포함된다. 체육과 연관된 사회 전반의 여러 분야와 관계 전문가와 생활 세계 곳곳의 수많은 체육은 제외된다. 21세기의 범세계적인 다양하고 폭넓은, 나날이 확장되는 엄청난 체육이 최 차관에게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한 ‘엘리트 체육’으로 축소되었다.

그래서 다음의 표현이 기계적으로 이어진다. ‘현장의 목소리’ 말이다. 이때 ‘현장’은 어디인가. 맥락 없이 봐도 이 ‘현장’은 엘리트 체육이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대표하는 대한체육회 등 오래되고 폐쇄된 구조다. 이를 맥락 속에서 검토하면, 2019년 초 빙상의 조재범 코치 가해 사건으로 인하여 대통령까지 나서서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을 지향하는 체육계 개혁을 지시하였고 이에 문체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까지 구성하여서 물리적인 가해뿐만 아니라 그러한 범죄가 상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체육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때 바로 그 ‘현장’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다. 그런데 최윤희 차관은 바로 그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 것이다.

7개월이 흘렀다. 우려대로, 차관은 애초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혁신위의 권고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특별히 시급하고 중요한 ‘스포츠윤리센터’ 신설은 혁신위 권고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차관의 표현대로 ‘체육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중에 체육계의 고질적인 폐습과 비인간적인 관행은 장마철의 습기처럼 만연하여 결국 최숙현 선수가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비통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슬프다.

다시 최윤희 차관을 생각한다. 아무리 비통하다 해서 그것이 차관과 직접적으로 상관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물러나야 한다.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 체육계 현장’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는데 최숙현 선수는 현장이 아니며 그의 호소는 목소리가 아닌가.

진실로 최 차관이 ‘체육인의 한 사람’이자 ‘국가대표의 선배’라고 한다면 이 비통한 죽음에 대하여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7월 초, 대통령이 두 차례나 직접 차관을 지목하여 반드시 사건 자체를 해결하고 제반의 개혁과제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최 차관은 ‘현장을 대변’할 게 아니라 이 국정과제를 엄수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것이 마뜩지 않다면? 고위공직에서 내려와 체육단체로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면 될 일이다. 그 자리는 헌법 정신에 따라 국가의 공적 책무를 위하여 공적 헌신을 해야 하는 자리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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