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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Leeds)는 영국 중북부의 대도시다. 맨체스터 동쪽으로 70여㎞, 런던 북쪽으로 300여㎞ 떨어져 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주요 산업도시로 발전했고 지금도 상업·행정 중심지로 꼽힌다. 인근의 맨체스터나 리버풀보다 큰 도시인데도 덜 알려진 이유는 관광객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 클럽’ 축구팀이 없다는 것도 두 도시와 차이가 나는 점이다. 그러나 리즈에도 1919년 창단한 유서 깊은 연고지 축구 팀이 존재한다. 리즈 유나이티드. 한국 축구 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바로 그 팀이다.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왕년의 전성기·황금기를 뜻한다. 이 말의 출처가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다. 2005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팬들이 리즈 출신 동료 선수 앨런 스미스를 가리킨 말에서 비롯됐다. “리즈 시절, 스미스는 대단했는데….”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은 이 말이 유행어로 급속히 퍼지면서 지금은 연예인·일반인에게까지 두루 쓰이는 일상 용어가 됐다. 영국 BBC는 지난해 ‘세계의 독특한 축구 용어’ 기사에 한국의 신조어 ‘리즈 시절’을 주요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리즈의 본국으로 역수출된 셈이다. 이어 영국에서는 “리즈했다(doing a leeds)”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리즈처럼,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실패했다는 뜻이라 한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리즈 유나이티드의 ‘리즈 시절’은 화려했다. 1991~1992시즌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2000~2001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 등 강호로 군림했다. 그러다 2004년 2부리그 강등 이후 처절하게 몰락했다. 2007년부터 3시즌은 3부리그까지 추락했다.

절치부심. ‘리즈 시절’ 종말 후 ‘리즈했다’를 거듭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17년 만에 기어이 돌아왔다. 엊그제 2부리그 우승을 확정하면서 9월 개막 예정인 2020~2021시즌 1부리그(프리미어리그) 복귀에 성공했다. ‘장미전쟁 더비’로 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치열한 라이벌전이 벌써 기대를 모으고 있다. ‘리즈 시절’의 주역인 리즈가 보란 듯이 제2의 리즈 시절을 재현할지 지켜볼 일이다. 리즈 드라마 속편, 개봉박두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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