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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 행위에서 상당히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경우, 해당 개인이나 집단의 인권 감수성은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침해 당사자는 대체로 관행이라니 농담이라느니 제도가 불비해서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스포츠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여자실업축구(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서울시청 소속의 박은선 선수에 대해 ‘성별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 폭력적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감독들은 ‘농담’이었다고 변명하다가 결국 수원FMC의 이성균 감독, 고양 대교의 유동관 감독이 사퇴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여성적 외모’라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이 문제다. 주디스 버틀러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여성다움’이란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남성 권력의 판별식이다. ‘소녀’ ‘섹시’ ‘팜므 파탈’ 같은 말들, 심지어 ‘여성 전사’처럼 얼핏 보기에 여성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표현조차도 실은 남성 권력의 문화적 프레임이다. 남성 권력은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이 다양한 프레임으로 ‘호명’한다. 육체적인 힘의 특성이 필요한 스포츠계에서 놀랍게도 ‘여성적인 외모’ 운운하며 박은선 선수의 ‘성별’을 폭력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맥락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시청 여자축구부 관계자들이 박은선 선수 성별 논란에 관한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또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초반에 그들이 취한 심리적 반응이 ‘농담’이었다는 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이 주도하는 이 사회의 수많은 공적·사적 영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나름대로 심각하게 논의를 했으면서 사태가 불거지자 ‘농담’이라는 어리석은 위장막 뒤로 숨으려는 양태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농담’은 이제 ‘비겁한 변명’이란 속뜻을 갖게 되었다.
지난 4월, 포항스틸러스의 노병준 선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베이징 궈안 소속의 카누테 선수를 인종차별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가 급히 내렸다.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한번 물어버릴까, 새까매서 별 맛 없을 듯한데”라는 말이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급히 내린 후에 올린 ‘사과글’이었다. 그는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라고 올렸다. 이는 변명도 아니고 해명도 아니다. 그의 놀라운 축구 실력에 비해 사회적 상식은 너무 낮았다.
그뿐인가. 지난 6월에는 한화 이글스 김태균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의 셰인 유먼 선수의 피부색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에 재발 방지를 요청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롯데 팬들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정도였다. 이에 김태균 선수와 구단이 사과를 했지만 그 문장과 뉘앙스는 내키지 않은 변명에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사무적인 용어로 말이다. 당시 유먼 선수는 “나에게 직접 사과를 하거나 사과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았다”고 밝힌 적 있다. 허공에 뿌리는 사과성 발표는 진정한 사과와 거리가 멀다.
사안마다 경우가 다르고, 운동 하는 사람들끼리의 친밀성이 조금 과하게 표현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 모든 사안들은 우리 스포츠계의 인권 감수성, 아니 그런 용어가 아닐지라도, 이를테면 사회적 상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준다. 왕년의 백전노장 선수들이 텔레비전에서 출연해 “그때는 정말 심하게 맞으면서 운동했다. 그래도 서로 의지가 되고 때리고 맞으면서도 끈끈한 정도 느꼈는데, 요즘 선수들은 너무 유약하다”는 식의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풍토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신생구단 KT의 조범현 감독이 지난주에 한 발언도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신인 선수들이 시험 때문에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일”이라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당연한 의사 표현이고 그 핵심 역시 “너무 힘들게 산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어쩌겠나. 아직 학생들이니 시험은 봐야지”라는 말로 이어졌어야 했다.
KT 선수들 중 절반이 아직 학생 신분이다. 구단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면서 각 학교에 양해를 구해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중이다. 그런데 대학생 선수들은 졸업 시험을 봐야 하고 고등학생 선수들은 기말고사를 봐야 한다. 조 감독은 “훈련을 하려고 하면, 시험이 있다고 빠지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졸업시험, 졸업평가도 있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운동선수들에게, 프로 직행이 결정된 선수들에게 일일이 교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최소한 시험은 봐야 하는 것이다.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할 기회는 주지 못하더라도 시험은 보게 해야 한다. 시험 기간 중에 저 멀리 남해에 훈련 캠프를 차려 놓은 것은 구단과 감독의 실책이다.
그동안 스포츠계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변화 양상이나 사회적 상식의 건강한 변화 속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변화 속도 역시 ‘스포츠’라는 특성을 앞세워 너무 느리게 과거의 시간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권 감수성이나 사회적 상식의 체득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사회 전체가 퇴행을 하고 있으니 스포츠계가 과거의 관행, 언행, 제도에 영영 속박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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