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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을 빛낸 두 명의 축구 스타가 다시 한번, 오랜만에,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사람은 누구라도 듣고 싶은 소식으로 전해왔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소동으로 전해왔다. 이영표와 이천수, 두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영리하고 빠르게 그라운드를 누빌 것 같았던 이영표 선수는 지난 28일,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홈구장에 들어섰다. 밴쿠버는 경기 전체를 이영표에게 헌정했다. 티켓은 이영표의 사진으로 인쇄되었고 경기장에는 이영표를 기리는 영상이 흘렀으며 수많은 팬들이 이영표의 유니폼을 입었다.
한편 이영표와 더불어 두 차례의 월드컵을 함께했던 이천수는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폭행 사건이 있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구단의 중징계까지 내려졌다. ‘아내를 보호하려 했다’는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마지막까지 그를 믿으려 했던 팬들마저 돌아섰다.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의 ‘초롱이’ 이영표와 악동의 대명사 이천수. 엇비슷한 나이와 환경에서 성장한 두 선수는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인간의 내면세계를 핀셋으로 꼭 끄집어내어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동안 축구장이나 언론을 통해 비친 것으로 가늠해 보건대, 두 선수의 ‘성찰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길을 예고한 듯 보인다.
한국-이탈리아전에서 승리한 한국팀의 이천수가 이영표를 얼싸안고 환호 (출처 :연합뉴스)
이영표는 뛰어난 선수이자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전도 퍼포먼스를 벌이는 게 아니라 겸손과 모범을 실천하는 쪽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 따르면 이영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기도한다. 크게 외치기보다 무릎으로 기도한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무릎으로 기도한다’는 비유의 참뜻을 짐작으로 되새길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겸손한 자세로 묵묵히 실천한다는 뜻일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 성찰이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리라.
아쉽게도 이천수는, 이영표에게는 넘쳐나는 덕목을, 많이 갖지는 못한 듯하다. 물론 이 점만으로 두 선수의 인간적 면모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 역시 이영표보다는 이천수 쪽에 더 가까운, 결함투성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천수에게 마음이 간다.
이천수의 애창곡은 임재범의 ‘비상’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라고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독일 월드컵 이후 그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랐다.
국내 리그를 벗어나 낯선 곳을 너무 오랫동안 유랑해야만 했던 이천수는 이윽고 올해부터 인천에 안착하여 K-리그를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이천수가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빼놓지 않고 읽었다. 어느 일간지에는 일종의 ‘자전 수기’가 연재된 적도 있다. 아쉽게도 그 내용들은 너무 형식적인 ‘반성문’이었다. 빈곤한 어휘, 틀에 박힌 반성, 설익은 다짐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이는 글쓰기 능력과 무관하다. ‘개과천선’한 모습을 너무 일찍 보여주려는 이천수의 조급증과 ‘돌아온 탕자의 수기’를 급조라도 하여 게재하려는 언론의 과욕들이 문제였다.
폭행 사건에 휘말린 이천수가 인천 남동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천수는 언론과 세상이 원하는 ‘돌아온 탕자’의 이미지를 너무 의식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억지로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윤색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진짜 내면을 억눌렀을 것이다. 세상도 그를 그런 이미지에 가두려 했다. 그가 반칙을 하거나 심판에게 항의라도 하면 어김없이 ‘이천수 또 반항?’ 같은 기사가 터져나왔다. 그런 정도는 이영표도 하는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스럽게 팬들과 접점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천수와 언론의 ‘기이한 공생 관계’는 깊이 있는 성찰의 시간 대신 조급하고 초조한 시간을 급조해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분노의 주먹>은 어느 권투선수의 흥망성쇠를 통해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속으로는 한없이 불안하고 여린 인간의 내면을 탐문한다. 주인공 라모타는 선수로서나 개인적인 삶으로서나 거듭 실패한다. 어떻게든 재기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수하고 좌절한다. 그러던 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 유명한 장면에서, 라모타는 유치장의 벽을 제 주먹으로 치면서 울부짖는다. “왜? 왜? 왜?” 하는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그렇게 지독한 과정을 거친 끝에 라모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이천수도 그렇고 실수투성이고 모순덩어리인 우리 모두에게도 강력한 교훈이 되는 장면이다. 이천수가 좋아하는 노래 ‘비상’은 이렇게 끝난다.
힘겨웠던 방황이 결국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어준 거야”.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바라건대, 나는 그런 날이 조금은 늦게 오기를 바란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라 권유다. 너무 요란하게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할 게 아니다. 긴 시간을 들여서 자신과 가족과 팬과 축구장을 거듭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가 돌아오게 될 때, 우리 같은 나약하고 흠집 많은 인간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의 진퇴양난이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이므로.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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