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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8일 공부를 위하여 한국사회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이틀간에 걸친 학회의 마지막 순서인 ‘스포츠 메가이벤트와 한국 사회’에 토론자로 갔지만, 진짜로 공부를 하러 갔다. 스포츠를 통해서 한국 중산층의 감정 상태를 파헤친 정준영 교수가 사회를 봤고 스포츠교육학 전문가 정용철 교수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스포츠 영웅들에게 어퍼컷을 날려온 정희준 교수가 참석하였는데, 나까지 더하여, 일순간 스포츠비평의 ‘정 콰르텟’이 형성되었다.

나는 사회사 전문가들이 이틀에 걸쳐 발표한 논문을 일별하여 보았는데, 아! 꼼꼼하게 읽을 만한 게 무척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며칠 동안 논문들을 살펴보았고, 각 논문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각주나 참고문헌에 언급된 자료들을 일별해 보았다. 그 대강을 간추려 옮기는 바이거니와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이 학술대회를 조직한 광운대 김백영 교수의 학문적 자세와 성품으로 보건대 정부와 단체의 진지한 부탁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살피건대, 근대에 도입된 축구나 야구가 식민지 조선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윤상길, 이동진 등은 탐사했다. 김은혜와 김백영은 해방 이후, 일본의 64도쿄올림픽과 우리의 88서울올림픽이 갖는 정치경제적 의미 및 도시 공간의 재구성에 관한 새 관점을 제시했다. 일본 히토쓰바시대학교의 마치무라 다카시 교수는 2020도쿄올림픽과 글로벌 시대의 도시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이러한 메가이벤트가 한 사회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 사정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올림픽과 도시 개발 및 강제 철거에 대한 남상우의 분석, 장애인올림픽의 위협적인 시선에 대한 주윤정의 진단, 2018평창올림픽과 정치 갈등에 대한 박보현의 판단 등은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이 사회의 각종 차별과 갈등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므로, 좀 더 깊은 탐사를 요구한다.

지난주에는 21세기의 도시 상황을 밝히는 학회에 공부하러 갔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여, 낙후한 도심지에 중상류층이 진입하면서 도심 공간을 그들의 기호와 이익에 맞게, 겉으로는 문화적으로 세련되게, 속으로는 자본적 이익에 맞게 폭력적으로 재구성하는 현상을 우리의 도시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신현준, 양재영, 이기웅 등은 우리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폭력적 양상을 분석했다.


▲ “관급 용역형 연구는 ‘그만’
이젠 경기장 밖으로 나와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뒤엉킨 난제 실마리 풀려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그동안 국내의 스포츠 연구, 또는 스포츠학계의 연구는 계량적, 제도적, 생리학적 연구에 집중되어 왔다. 이 분야의 선진적인 연구 방법의 도입과 그 결실을 애타게 기다리는 바이지만 실험실의 측정과 설문 조사의 응답률만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일들, 무엇보다 스포츠계 내에서 벌어지는 비윤리적이며 폭력적인 사태들이 엄연하기에 보다 확대된,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론과 연계되는 흐름을 나는 기대해왔다.

물론 ‘스포츠 사회학’이 따로 있고, 이 분야의 논문이나 연구도 드물지 않지만, 대체로 특정한 스포츠나 여가 행위가 어떤 사회적 이유에서 유행하는지, 그 기능과 효과는 무엇인지를 밝히는 차원이었다. 선수들이 처한 폭력적 환경, 우리의 스포츠를 주도해온 국가주의의 명과 암, 글로벌 기업의 스포츠 지배 담론, 스포츠를 통한 권력의 감정 생산과 이를 통한 지배의 방식, 여기에 반드시 덧붙여 스포츠 행위에 집중되는 하위 계급의 정치적 욕망, 사회적 불만, 문화적 표현 등 분명하게 밝혀야 할 난제들은 여전히 뒤엉켜 있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관급 용역형 연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연구는, 예컨대 강력한 국가주의로 과잉 열기가 분출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밝히기 어렵고 인천 아시안게임처럼 변화된 도시 감수성을 읽지 못하고 파탄이 난 대회로부터 그 어떤 교훈을 찾지 못한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비인권적 상황 역시 이 같은 용역형 연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전국태권도대회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또 터졌다. 이에 연루된 사람은 학부모의 자살까지 부른 또 다른 승부조작 사건에도 연루된 인물이다. 그는 무려 5명의 심판에게 지시하여 서울시태권도협회 김모 전무의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거의 매달 밝혀지고 있는, 이러한 폭력과 비리 사태의 뿌리 깊은 구조, 그것의 개혁, 그 로드맵 등은 기존의 관급 용역 연구로는 어림도 없다.

스포츠계는 경기장 바깥으로 나와서 다양한 학문들과 융합해야 한다. 예컨대 크고 작은 대회를 유치하려는 지자체나 기관은 신현준 등이 탐사한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문제를 적극적으로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를 게을리했다가는 아시안게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인천처럼 되기 쉽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도 김백영이나 박보현 같은 학자의 날카로운 진단을 경청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평창올림픽이 천혜의 환경도 망치고 지역 갈등만 양산한 채 재정위기에 처할 수 있다. 관제 연구와 관급 공사 관계자들의 택배 연구를 끼고 일방 독주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86·88 개발신화’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21세기의 스포츠는, 그리고 도시는, 한 세대 전의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섰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감수성,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어쩌면, 너무 늦었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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