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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영원하고 감독은 경질된다고 하더니 이런 속설을 비범한 경지로 무너뜨린 사람이 있다. 엊그제 마지막 홈 경기를 치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이다. 이 경기는 리그 우승 20회를 자축하는 경기이자 무엇보다 1993년에 맨유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여 20년 넘게 이 팀에서만 공을 찬 폴 스콜스의 은퇴 경기라는 점에서도 각별했다. 퍼거슨은 스콜스에 대해 “가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조용히 사는 걸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요즘 선수들 중에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 적 있다.


영국 축구 알렉스 퍼거슨 감독 (로이터 연합뉴스)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는 26년 동안 자신을 영광의 그라운드로 만들어준 노장을 위한 감사의 인사말로 넘쳐났다. 맨유를 후원하는 어느 기업은 ‘투 비 컨티뉴드’라는 문구를 90분 동안 쉬지 않고 내보냈다. 어느 팬은 ‘불멸의 인물’이라는 문구를 흔들었다. 상대팀 스완지시티의 선수들마저 도열하여 그의 마지막 홈 경기 입장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들을 2-1로 눌렀다. 10년 넘게 자기 팀의 수비를 맡았던 리오 퍼디난드가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골을 터트렸을 때 퍼거슨은 26년 동안 늘 그랬듯이 두 손을 치켜들며 펄쩍 일어나 뛰었다. 골! 이 한마디에 평생을 걸었던 축구인의 순정한 표정이었다.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연말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처제가 세상을 떠났고 그 때문에 아내가 외롭게 지냈으니 이제는 그라운드를 떠나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겠노라고 71살의 할아버지 퍼거슨은 말했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하던 지난해 11월24일, 맨유의 전설들이 올드 트래퍼드에 모인 적 있다. 저 60년대 이후로 맨유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노장 보비 찰튼을 비롯, 에릭 칸토나, 페테르 슈마이헬, 드와이트 요크, 군나르 숄샤르, 반 니스텔루이 그리고 박지성까지 참석했던 퍼거슨 동상 제막식 행사였다. 퍼거슨 감독은 사랑하는 아내 캐시와 데이비드 길 단장 그리고 조각가 필립 잭슨과 함께 자기 자신을 1.5배쯤 확대한 동상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그라운드에 바짝 붙어서서 초조하게 골을 기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2.7m의 동상, 바로 그 주인공은 1986년 11월22일 맨유의 감독이 된 이래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 등의 대회에서 무려 38차례나 우승했다. 한 팀에서 26년 동안이나 감독직을 맡은 것도 대단하지만 여러 차례의 위기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감독에게 사반세기 동안 팀을 맡긴 구단도 기억할 만하다.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인테르 밀란은 지난 20여 년 동안 18명의 감독을 교체했다. 트라파토니, 리피, 만치니, 무리뉴, 베니테스 등 최고의 명장들이 다녀갔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도 발다노, 카펠로, 카마초, 델 보스케, 슈스터 등 무려 24명이 거쳐갔다. 잉글랜드의 첼시도 포터필드, 호들, 훌리트, 스콜라리, 히딩크, 안젤로티 등 천하의 명장 14명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하여 우승을 거두기도 했고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맨유와 퍼거슨도 그랬다. 우승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구단과 감독과 선수들이 서로의 마음에 찰과상을 입히기도 했다. 그래도 사반세기를 버텼다. 그래서 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어쩌면 21세기의 축구사 100년 동안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퍼거슨이 꽃마차를 타고 맨유에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맨유를 맡기로 한 80년대 중반에 맨유는 중하위권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연전연승의 리버풀이 잉글랜드 축구를 이끌던 시대였다. 퍼거슨의 첫 시즌 성적은 11위였다. 1990년에는 해임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퍼거슨에게는 한두 시즌의 반짝 승리보다는 팀의 장구한 생명력을 위한 과감한 전략이 있었다. 그것은 미래의 맨유를 책임질 유소년을 선발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에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당장의 현역은 필요했다. 에릭 칸토나, 테디 셰링엄, 폴 인스 등이 팀의 주력을 맡았고 그 아래로 이제 막 사춘기에서 벗어난 선수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라이언 긱스를 시작으로 니키 버트,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같은 어린 선수들이 21세기의 맨유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경향DB)


퍼거슨은 유망주 스카우터를 무려 17명이나 배치했다. 한 팀의 숫자보다 더 많은 스카우터들이 전 세계를 돌면서 뛰어난 선수들을 발굴했다. 박지성 선수가 그들의 눈에 띄었을 때, 그리하여 아인트호벤에서 맨체스터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오직 이 퍼거슨 시스템에 무지한 사람들만이 ‘티셔츠 판매용’이라고 비난했을 뿐이다. 박지성은 퍼거슨과 함께 7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퍼거슨의 영광은 98-99 시즌이었다. 그때 그는 트레블, 즉 3관왕의 신화를 썼다. 그후 팀이 어수선해졌다.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것도 미국 자본의 수중에 넘어가자 맨유의 순혈주의자들은 통곡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도 퍼거슨의 위상을 흔들지는 못했다. 퍼거슨은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 구단 수뇌부의 그 누구도 라커룸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선수에 관한 모든 것은 곧 감독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야프 스탐과 데이비드 베컴과 로이 킨을 떠난 자리를 퍼거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마이클 캐릭 그리고 박지성 같은 선수들로 채웠다. 그리하여 맨유는 전설에서 신화의 단계로 비약했다. 그의 사반세기는 어쩌다 세월을 보내다 보니 저절로 얻어진 ‘퍼기 타임’이 아니었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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