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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지네딘 지단이 수원에 왔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가 평가전을 치른 것이다. 그날 지단은 지쳐 있었다. 더욱이 맞상대는 김남일. 이 진공청소기는 지단의 기운을 다 빨아들였다. 지단은 제 뜻을 다 펴보지 못하고 벤치를 향해 교체 사인을 보냈다.
다음 날, 대개의 스포츠 기사들은 지단이 교체된 것을 두고 세 가지 정도의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다. 노쇠했다는 추측이 첫 번째였다. 그러나 그는 2002는 물론 2006월드컵까지 치렀다.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가 평가전을 우습게 여겼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표팀으로서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지단 같은 선수가 이를 가벼이 여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유럽 리그가 너무 늦게 끝나서 컨디션을 회복할 여유가 없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프랑스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그라운드에 넘어진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경향DB)
이 세 번째가 그나마 현실성이 있었다. 유럽의 빅리그는 8월 중순에 시작해서 5월 하순에 끝난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다소 앞당겨지긴 한다. 그래도 5월 초까지 박빙의 리그를 뛰어야 한다. 게다가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는데 이런 은하계 최고의 팀은 거의 모든 대회의 막판까지 뛰게 된다. 그런 후에 수원으로 왔으니 지단의 몸은 균형 잃은 팽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단이 축구 인생 전부를 걸고 치러야 했던 경기가 또 하나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때문에 20세기적인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이민자와 유색인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삼았는데 이 파괴적인 선동이 인기를 끌었다. 르펜은 ‘온갖 유색인종이 뒤섞인 대표팀은 순수한 프랑스가 아니다’라며 극우적인 드리블 돌파를 감행했다.
극우파 대선 후보 르펜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젊은 학생들 (연합뉴스)
지단은 이 파괴적인 준동에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르펜과 국민전선의 반인륜적인 인종차별 선동에 맞서 싸웠고 성명서를 통해 강력한 백태클을 걸었다. ‘지단이냐 르펜이냐, 진정한 프랑스인이라면 현명하게 선택하라.’ 그제야 프랑스가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단은 그렇게 장외 혈전을 치르고 나서 수원으로 왔다. 개인 컨디션 회복이나 팀 훈련 같은 것을 할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페인트 등으로 훼손돼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장 마리 르펜 당수의 선거포스터 (연합뉴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신문이나 방송의 외신 뉴스만 훑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경기 결과나 이적 소식 말고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유명 선수일수록 그 사회의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그러한 일에 거의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운동 선수가 뭘 안다고’ 하는 근거 없는 편견도 얼마쯤은 작동할 것이다. 선수들이 사회의 평균적인 상식이나 변화와는 무관하게 ‘운동 기계’처럼 성장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런 무지와 편견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한 사람 더 살펴보자. 펠레!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느낌부터 드는가. 축구 황제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를 알리는 친선대사 같은 느낌도 난다. ‘펠레의 저주’라고 해서 묘하게도 우승 팀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머리에 공을 올려놓고 컨트롤하는 묘기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떠한가. 브라질은 20세기 대부분을 잔혹한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살았다. 그때 축구가 있었고 펠레가 있었다. 세계 최강의 브라질 축구와 은하계 극강의 펠레 같은 스타는 군부 독재의 어릿광대가 되기 쉽다. 그런데 펠레는 그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다. 그래서 미움을 받았다.
브라질에는 독재 정권보다 더 강력한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 바로 브라질축구협회다. 축구라는 브라질 최고의 산업과 절대적인 영혼을 거머쥔 이 제국의 통치자가 주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이다. 그는 사반세기 동안 FIFA 회장을 지내면서 브라질 축구를 움켜쥐었고 반세기 가까이 IOC 위원을 지내면서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브라질 축구 마피아를 ‘큰 모자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이 형님들을 골치 아프게 한 인물이 펠레다. 펠레는 그들의 어릿광대 노릇을 거절했다. 그래서 브라질보다는 해외로 나가서 활동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는 부패한 큰 모자 형님들이 수많은 무명 선수들과 가난한 아이들의 꿈을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했다.
펠레가 한때 체육부 장관을 한 적 있다. 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체육부 장관으로 펠레를 초빙했다. 나라 밖으로 떠돌던 펠레는 모처럼 개혁의 기회를 맞아 축구협회 개혁에 나섰다. 물론 그의 시도는 좌초됐다. 아직까지도 브라질 정부의 개혁성은 유지되고 있지만 축구협회만큼은 무소불위의 철옹성이었다. 아벨란제의 사위가 ‘대권’을 이어받았고 그들은 또 하나의 정부처럼 움직였다. 펠레의 개혁 시도는 물거품이 됐고, 월드컵 명예 대사라는 직함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브라질의 펠레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뒤 팬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지난 4월, 외신은 펠레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당했다고 보도했다. 상파울루 주정부가 1964년에서 1985년까지의 군부 독재 비밀기록 2만여 건을 공개했는데 그 가운데 펠레 파일이 있었다. 우리가 경기 내용이나 그 결과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경기장 바깥까지 두루 살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순백의 진공 상태가 아니라 그 사회의 긴장과 욕망이 뒤엉키는 공간이고 선수들은 그 중심에서 늘 선택의 강요를 받는다. 이를 깊이 헤아릴 때, 스포츠도 발전하고 사회도 성숙한다. 아니 그런 말 이전에 선수들의 처지와 고뇌를 이해하게 된다. 그게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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