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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쩌다 우연히. 그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어디에서 오고 있었는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 자크는 여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은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다고 그의 전 주인인 대위가 말했다고 했다.”

주인공 자크는 모든 것이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다고 믿는’ 말 그대로 운명론자이다. 그런데 그는 흔히 생각하는 체념주의로서의 운명론자가 아니라 행동주의 운명론자이다. 불의와 이웃의 곤경에 그냥 물러서지 않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도 모든 것이 운명이라 믿는 이 희한한 운명론자는 우연과 부조리에 기꺼이 맞서 필연과 정의를 개척해나간다는 점에서 어쩌면, 돈키호테와 같은 이상적 낙관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다.

주인은 이 열정적이며 낙천적인 수다쟁이 자크에게 그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조롱하듯 묻는다.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기 때문에 네 은인이 오쟁이진 남편이 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네 은인을 오쟁이진 남편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다고 하는 것이냐?” 자크는 답한다. “둘 다 나란히 씌어 있습죠. 모든 것은 한꺼번에 씌어 있습니다. 그건 마치 커다란 두루마리가 조금씩 펼쳐져가는 것과도 같습죠.” 운명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운명을 끌고 가는지에 대한 자크의 이 묘한 답은 끝내 명확히 해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계몽주의자 디드로가 신중하며 사변적인 지식인 ‘주인’보다는 이 좌충우돌 행동파 하인 자크를 편애하고, 심지어 자크를 ‘진정한 주인’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크는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두루마리를 누가 쓴 것인지, 또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사후 세계가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다만 닥쳐오는 생의 우연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할 뿐이다. 그가 체념주의나 회의주의자가 아닌 것은 그 행동에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 자신을 통제할 수만 있으면 전 그 일을 기뻐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겁니다”라는 것은 우연에 몸을 맡기지 않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크가 말하는 저 높은 곳의 두루마리는 구구한 생의 이력과 결말이 아니라 이러한 원칙들로 채워져 있는 법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들은 운명론에 관한 가장 명쾌한 답변이다.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역순으로 그 생을 채워간다고 할 수 있는 이 운명론은 보르헤스가 제시한 시간관을 생각나게 한다. 보르헤스는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관한 연구>라는 단편에서 브래들리의 도치된 세계를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그 세계에서는 죽음이 탄생보다, 상처의 딱지가 상처보다, 상처가 가해 행위보다 앞서 나타난다. 즉 이러한 세계에서 삶은 궁극적인 결과 혹은 정해진 운명을 완수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 생각은 흔히 말하는 예정론, 운명론의 다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지막 결말을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는 저와 같은 희한한 운명론자들의 고투가 겹쳐 있다. 절대로 변치 않을 것 같은 지역에 돋아난 푸른색은, 이즈음 우리에게 쏟아진 또 하나의 기적이다. 아홉 번의 도전 끝에 울산시장에 당선된 송철호는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예의 ‘운명’을 언급했다. 노무현 형과 문재인 동생의 운명에 끼인 운명. 숱한 낙선 끝에 몰래 이사를 한 당선인을 불러 문재인 대통령은 “형 다시 이사 가소”라고 했다고 한다.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라고 항변하자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라고 했다는 후일담. 6·13 지방선거에서 확인한 지역주의 타파의 흐름은 이미 이것을 ‘운명’으로 결정한 이들의 성취이자 승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승리’를 예견한 승승장구의 길이 아니라 정의와 원칙의 두루마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었던 고행의 길이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은 이 숭고한 운명론자들이 받든 고귀한 두루마리의 한 자락일 뿐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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