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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강원도의 농촌지역 고등학교에서 쌍둥이 형제를 만났다. 일란성 쌍둥이였기 때문에 생긴 것도 비슷하고 습관적 몸짓과 같은 행동까지 비슷해서 둘을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코미디처럼 속이는 것을 즐길 정도였다. 그런데 이 둘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었는데 바로 공부하는 성향의 차이였다. 논리적인 설득에 장점을 갖고 있는 10분 먼저 태어난 형은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고, 수학적 사고구조를 좋아했던 동생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서로 다른 노력을 하면서도 때로는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협동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교내 모의법정 변론대회에서 학교폭력과 관련된 가상의 사건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일 때 이 형제는 검사 측으로 함께 참여하여 서로가 갖고 있는 능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물론 이 과정은 ‘법과 정치’라는 인문계열 과목의 토론학습 과정이었지만 공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융합적 공부를 할 수 있게 한 경험이었다. 이 둘 외에도 참여 학생들은 변론대회를 준비하면서 기초적인 법률 관련 학습을 비롯하여 사회적인 문제의 발생원인과 그 대처방법 등에 대한 공부를 했다. 이 과정도 선생님을 통해 기본적인 학습을 진행한 뒤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스스로 자료를 찾고 그것을 분석하여 변론의 요지와 논리를 구성했다.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어려운 환경의 쌍둥이 형제가 행사의 준비 과정에서 법률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형제의 선택은 지역사회의 도움이었다. 읍내에 있는 순회법원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순회판사가 지역의 소송 사건을 재판하는데, 그 순회판사에게 전화 해서 자문을 구하면서 모의재판을 할 장소로 읍내의 재판정을 빌려달라는 당찬 부탁도 했다. 행사 당일에 기대하지 않았던 지역 담당 판사도 행사장에 와서 심사를 해주는 등 기대보다 훨씬 멋지게 진행할 수 있었다.

대학교수 등과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요즘의 교육과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의견들 중 상당수는 자녀들의 수행평가나 심화학습 연구 또는 대회 참여에 도움을 주면서 “이렇게 도와줄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경쟁한다는 말인가”라고 자랑 섞인 푸념을 한다. 이들의 자랑질을 본 평범한 학부모들은 ‘이런 부모들도 힘들다고 하는데 평범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진심어린 한탄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해야 하는 수행평가를 학생들이 하지 않고 학부모나 돈을 받고 학교 밖에서 해주는 것이 부정행위라는 비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듯 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니까 자식이 힘들어 하는 것을 그냥 볼 수만은 없다는 이유인가? 그러면 수능시험을 대신 보아도 된다는 말인가?

부모들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교육과정을 아주 잘 준비해서 진행하고 있다. 교육제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기에 앞서 ‘부정행위’를 자랑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들부터 좀 비켜주면 좋겠다. 자녀 몇 명을 길러봤다고 자신을 교육전문가라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교육은 전문분야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육전문가 집단은 바로 교직사회다. 우선 정부부터 선생님들을 교육전문가로 존중해야 한다. 괜히 경제전문가들이 교육문제에 달려들고, 사교육업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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