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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이나 되었을까. 중국 한(漢)나라 시절 왕소군(王昭君)이란 궁녀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나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강건하지 않았다. 주변 이민족들, 특히 흉노부족의 무력에 항상 전전긍긍하고 있을 정도였다. 왕소군이 흉노부족에 반강제적으로 시집을 간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땅도 물도 낯설기만 한 흉노 땅에서 그녀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가리라 꿈꾸지만, 그 언젠가는 도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탄식과 절망으로 시들어가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다시 흉노 땅에도 봄은 찾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서러운 땅에서도 어여쁜 꽃들은 속절없이 피어난다.

화려한 자태와 그윽한 향기를 뽐내는 꽃들은 왕소군의 쓸쓸한 마음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그녀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담겨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번역해보자. “어찌 대지에 화초가 없으랴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들판에 혹은 정원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니 분명 봄은 찾아오긴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직 깊은 겨울, 찬바람이 휑하니 휘몰아치는 겨울밤이었다. 그녀는 가족을, 친구를, 옷을, 시냇가를, 나무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온기를 제공할 수 있는 게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봄이 왔다고 해도 봄으로 세상이 느껴질 리가 있는가.

왕소군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면, 그녀의 마음에도 봄볕이 찾아들어 봄을 봄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어도 좋다. 그녀의 가족이나 친구 중 한 사람이라도 찾아온다면, 아니면 고향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도 누군가가 보내준다면, 아주 잠시지만 그녀의 마음은 봄 햇살에 활짝 핀 봄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왕소군의 겨울처럼 차가운 마음 깊은 곳에 봄을 예감하는 작은 따뜻함이 숨어 있다고. 그녀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이런 진정한 봄을 예감하는 따뜻함, 혹은 엄동설한이라도 봄을 품고 있는 여린 따뜻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밀양(密陽)! 그렇다. ‘은밀한 볕’, ‘숨어 있는 따뜻함’! 바로 밀양이다.

왕소군이 흉노 땅에서 시 한 편을 우리에게 던졌듯이, 4월10일 내게 절절한 글 한 편이 밀양에서 올라왔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 보낸 e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꽃피는 새잎 돋는 좋은 시절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사이 밀양 송전탑 관련하여 뜬금없이 제 분노에 겨워 띄우는 소식들에 더러 황망하시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 저들 권력과 자본, 정확히는 한국전력이 주민들로 하여금 돈으로 전향을 강요하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 참담한 폭력은 갈수록 주민들을 옥죄어옵니다. 밀양은 지금 마지막 남은 4개 농성장을 지키는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호소는 단 하나도 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원안 그대로 강행할 태세입니다. 물리력으로서만 말입니다.”

이계삼 사무국장의 이어지는 편지는 밀양의 긴박한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이제 30개 마을 중에 한전과 합의를 하지 않은 마을은 다섯 곳만 남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의 유혹과 공권력이 주는 공포감,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으로 한전은 마을 주민들의 연대를 와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013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던 2900여명의 주민 중 이제 농성장을 지키는 주민은 200여명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전체 주민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로 전락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한전과 경찰 측은 4월13일과 14일에 행정대집행을 공공연히 예고하고 나섰다고 한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출처: 경향DB)



▲ “돈의 유혹과 권력이 주는 공포… 송전탑 반대 주민 갈수록 줄어
인간적인 가치 지키려는 소망… 밀양 어르신에 연대의 손길을”


단순하다. 밀양에 강행되는 송전탑 건설은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와 2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고 수급하려고 송전탑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력 생산과 수급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정부도 송전탑 건설 강행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 송전탑 건설 강행에 자본과 권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자본과 권력은 송전탑 건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지속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재벌이 막대한 이득을 남긴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현재 200여명으로 축소되었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의 어르신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지금 어르신들이 자본과 권력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 굳건히 서 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적인 삶! 춘래불사춘의 밀양이 품고 있는 소망스러운 따뜻함은 바로 이것 아닌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생태주의 등등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저 예전처럼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싶은 어르신들의 마음만 생각하자. 어르신들의 소망이 관철될 때, 인간적 가치는 저절로 실현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소수로 전락했지만 진정한 봄을 잊지 않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왕소군의 처량함과 쓸쓸함이 중첩되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왕소군을 찾아가 위로해주었다면, 혹은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이라도 보냈다면, 그녀는 덜 춥고 덜 외로웠을 것이다. 마음을 기울인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연대! 어쩌면 밀양의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은 이것 아닐까. 그렇지만 과연 밀양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강신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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