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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온 것은 4월18일 새벽이었다.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절망으로 가득한, 보는 사람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4월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섬세하고 여린 그녀의 영혼을 갈래갈래 찢어버린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그녀는 17일 내내 곡기마저 끊었던 것 같다.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포함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으니, 어떻게 밥과 물이 입으로 들어오겠는가. 어떻게 붉고 노란 봄꽃과 푸르고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해소할 길이 없는 슬픔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분노, 그것이 그녀가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유일 것이다. 무슨 말로 시인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그녀와 통화를 마친 뒤, 한 달 전 광주광역시로 강연을 간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오후 2시쯤인가,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광주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6시간 뒤쯤 광주공항으로 갔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탑승을 마치고 좌석에 앉았을 때 깜짝 놀랐다. 6시간 전에 나를 광주에 내려준 바로 그 비행기에 다시 탔던 것이다. 내 독자이기도 한 스튜어디스 중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일을 다 마치셨나 봐요.” “예, 이제 올라가려고요. 그런데 광주에 계속 있었던 거예요.” 스튜어디스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그 사이 4번 정도 비행을 했는데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세월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행기도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피로도 피로지만, 그사이에 제대로 비행기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제대로 안전점검이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돌아보면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항공사들이 생겼는가. 저가항공을 표방하는 작은 항공사들이 경쟁적으로 항공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치열한 경쟁, 그 전쟁터에 던져진 것이다. 거대 항공사든 소규모 항공사든 더 많은 승객을 더 많은 운항 횟수로 실어 날라야 한다. 신형 비행기보다 중고 비행기를 구매하는 것도 경쟁에서 이기는 하나의 좋은 방법으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자유가 부여되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다. 세월호가 어떻게 서해를 다니게 되었는지 아는가.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선박의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다. 당연히 5년 정도 낡은 배를 더 몰 수 있으니, 해운 자본은 더 커다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이렇게 선박의 선령을 5년 더 늘릴 경우 약 250억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할 거라고 예측했다. 잊지 말자.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서는 우리 서민들의 안전은 일차적인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18년이나 일본에서 사용했던 세월호가 우리 이웃과 아이들을 태운 채 출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선박 수명에 대한 규제를 풀지만 않았다면, 2012년 해운 자본이 ‘나미노우에’라는 낡은 일본 배를 수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나 그 정권으로부터 규제 완화라는 선물을 받은 자본가에게 인간과 관련된 소중한 가치들은 이윤을 얻으리라는 장밋빛 후광에 가려 뒷전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에 날개를 달아주는 규제 완화와 그로부터 촉발되는 자본 간의 경쟁 심화로 실현된다. 간단히 말해 규제가 완화되거나 경쟁 논리가 도입될 때,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고 말하면 된다. 문제는 현 정권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멈출 줄 모른다는 데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이 있기 1~2주 전에 현 정부가 전방위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천명한 사실을.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출처 :경향DB)



▲ “자본가에 날개 달아준 규제 완화… 서민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
신자유주의가 만든 세월호 참사… 대중교통 영역 규제는 강화해야”


최소한 서민들이 이용하는 기차, 비행기, 여객선과 같은 대중교통의 경우 자본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폐기되어야만 한다. 경쟁 심화와 규제 완화가 지속된다면, 언제든지 제2의 세월호가 KTX라는 형식으로 아니면 항공기라는 형식으로 반복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이명박 정권이 자본의 이득이 아니라 서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선박의 제한 수명을 25년에서 20년으로 줄였다고 해보자. 과연 세월호 침몰과도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자본이 2년 동안 사용하려고 18년이나 된 낡은 배를 고가로 수입하려 하겠는가.

탑승객을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은 비겁한 사람들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득을 위해 승객들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선박을 과도하게 개조한 자본가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분노가 세월호와 그 주변 사람들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없었다면 세월호 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핵심이니까 말이다. 진심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긍정하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 무고한 학생과 서민들의 목숨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현 정권은 사후적 처벌을 강화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 정권이 규제 완화 정책을 재고하리라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27일 새벽 현재, 세월호 참사로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우리 아이와 이웃들의 수가 115명이다. 그리고 이미 안타까운 주검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는 187명에 이른다. 10만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사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리고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빌기 위해 안산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이웃들은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슬픔과 분노에만 빠져들지는 말자. 지금은 숙고와 결단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인간의 이름으로 폐기되어야만 한다! 세월호 참사가 수많은 비극들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미 주검으로 돌아왔거나 아직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피해 가족들과 김선우 시인처럼 슬픔과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강신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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