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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 철학자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그리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 개인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봉건사회의 구조적 압력에 거의 압사 직전에 이른 홍길동의 절규다. 이런 절규를 통해 홍길동은 간접적이나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고, 형을 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허균이 살았던 조선시대보다 더 나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자주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입각을 꿈꾸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5·16 군사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슬픈 것은 5·16에 대해 “답변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달라”는 장관 후보자들의 솔직한 주문이다. 그들은 모두 5·16이 쿠데타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실을 공개적으로 토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까.
현대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1947년 출생)라면 측은하기까지 한 우리 각료들을 냉소주의의 포로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 논리나 자기 보존의 욕망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어쩌면 더 못난 사람들이 어차피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새롭게 통합된 냉소주의는 자신이 희생자이고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해심을 보인다.” 1983년에 출간된 그의 히트작 <냉소적 이성비판(Kritik der zynischen Vernunft)>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볼썽사나운 풍경을 이보다 더 정확히 독해할 수도 있을까. 그렇다. 그들은 자기 보존의 욕망,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더 많이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욕망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향신문DB)
그래서 “답변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달라”는 부탁의 이면에는 당신도 나의 자리에 있다면 나처럼 할 것 아니냐는 반문이 깔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당신도 나만큼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냉소주의자 아니냐는 절규인 셈이다. 너무나 슬픈 일 아닌가. 지금 우리는 진실을 토로하면 자신을 보존할 수 없고, 반대로 진실을 억누르면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면 속에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어도 좋지만 그것을 결코 공개적으로 발화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불문율이었던 셈이다. 하긴 돌아보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면접관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는가. 혹은 회사 최고경영자(CEO)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는가. 문중 어른이나 시댁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는가. 혹은 부모나 선생님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는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을 토로하는 것을 하나의 저주처럼 만들어 놓았을까. 무엇이 진실 은폐를 하나의 삶의 태도로 내면화시켰던 것일까. 어쩌면 그 실마리는 진실이 아니라 허구를 강요했던 100여년에 걸친 반민주적인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가 우리를 강제로 병합했던 일본 강점기 시절, 우리는 지속적으로 허구를 강요당했다. 이승만 독재시절, 그리고 박정희 독재시절, 나아가 전두환 독재시절까지,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순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깝게 허위를 강요당하면서, 우리에게 냉소주의는 제2의 천성으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마침내 진실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검열해야만 하는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생존의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우리는 진실을 포기하고 허위를 말하도록 강요되기 쉽다. 그래서 IMF 구제금융 사태는 허위를 강요하려는 권력이나 자본에는 더 할 수 없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력에 대해 기꺼이 진실을 말하던 대학생들과 파업을 통해 자본에 대해 진실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화이트칼라에게 생존이란 중대한 문제가 화두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승만 독재에 맞서 싸우던 1960년의 4·19 혁명, 박정희 유신 독재에 저항했던 1979년의 부마항쟁, 그리고 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렸던 1987년의 6월항쟁은 에덴동산의 일처럼 멀기만 하고, 빛바랜 안줏거리나 취기어린 무용담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제 진실인 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냉소주의가 거대한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미시적 영역에까지 그 촉수를 뻗치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 ““5·16은 쿠데타” “불법 노동행위”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들이 쌓일 때에만
우리에게는 자기 보존 욕망보다
더 고귀한 공동체의 꿈 깃들 수 있지 않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1975)가 그렇게 비판했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도 어느 면에서 우리보다 사정이 더 나아 보인다. 히틀러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관료로서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을 결코 후회해본 적이 없다. 예루살렘 전범재판에서 당당하기만 했던 아이히만에게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으로 말해 유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무사유의 책임을 물었다. 그렇지만 생각이 없었을지라도, 최소한 아이히만은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토로하지 않는 냉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이히만은 최소한의 순박성과 순진무구함은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히만보다 더 교활해졌고, 더 야비해졌고, 더 타락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토로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고 인정되는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냉소주의는 정치적 진실과 사회적 진실에 눈을 감고 허위와 불의를 방관하도록 만든다. 냉소주의가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란 잿빛 아우라를 사회 도처에 독가스처럼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아. 너만 다칠 뿐이야. 진짜로 네가 걱정된다. 이제 아마추어처럼 살지 말고 프로로 사는 것이 어떠니.” 정말 친절한 냉소주의자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친절이 결국 자기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위 공직의 세계에서부터 대기업의 직장세계까지, 혹은 작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부터 가정생활에까지 질식할 정도로 팽배해 있는 냉소주의라는 유령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과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마지막 가르침을 기억하려 한다. “파르헤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려는 용기를 말한다. 그렇지만 파르헤지아는 단순히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위험 앞에서도”라는 단서 조항이다. 그래서 파르헤지아는 자기 보존의 욕망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5·16 군사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CEO가 불법 노동행위를 했을 때 불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비정규직법을 교묘히 이용하는 고용주에게 부당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이런 작은 용기들이 쌓일 때에만, 우리에게는 자기 보존의 욕망보다 더 고귀한 공동체의 꿈이 깃들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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