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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역상을 수상한 번역가는 10권이 넘는 전집의 번역을 모두 동네 카페에서 했는데 다섯 군데의 카페가 폐업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작년에 10권의 책을 펴낸 한 다독가는 원고를 모두 동네 북카페에서 썼다고 합니다. 하지현 신경정신과 박사는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문학동네)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썼다는 사실을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집에 작업할 책상이 없지 않은데도 이들은 왜 카페만 찾을까요? 하 박사는 적당한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있지만 시끄러워서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 “카페의 테이블은 집, 직장, 학교도 아닌 제3의 중립적 공간이며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훨씬 안정감을 느끼고 집중도 더 잘”합니다.

“원룸에서 하루 종일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보다, 커피 한 잔 값을 내고 앉아 있는 것이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과 연대감을 느끼되 서로 섞이지 않고 개인공간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타협점”이라는 하 박사는 카페에 앉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것을 ‘평행놀이’로 설명합니다. “상호작용을 하지 않지만 함께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것 자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발달단계의 놀이”가 바로 평행놀이입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어쩌다 우리는 카페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상호작용 없이 일을 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을까요? 김정연이 그린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창비)의 주인공인 20대 여성 이시다는 단독 생활을 즐기는 골든 햄스터 ‘쥐윤발’과 좁은 고시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나갑니다. 이시다는 인류는 어쩌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시다가 혼자 살게 되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만원이 훌쩍 넘는 백화점 비누 하나를 사서 개봉해서부터 쌀 한톨 크기가 될 때까지, 온전히 혼자서 다 써보는 것”입니다. “뭔가 다들 본능적으로 떠나보내야 할 때를 알고 있는 것”을 눈치챈 이시다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요?”

혼밥, 혼술, 원룸, 고립된 삶을 즐기는 것을 마냥 바라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사회적 뇌를 제대로 키울 기회도 없이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하 박사는 혼밥을 즐긴 박근혜 대통령의 예를 듭니다.

“그녀의 외골수 정치와 여론을 읽는 능력의 부족, 만천하에 밝혀진 팩트를 부정하는 고집, 기자회견을 하되 자기 발표만 하고 절대 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는 불통 습관”은 “1980년 이후 1997년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 밀폐된 곳에서 혼자 지내온 삶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혼밥 습관과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볼만한 측면이 많다.”

어려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신비주의 철학의 대가 맨리 P 홀은 <돌아보고 발견하고 성장한다>(Yoon&Lee)에서 “복합적인 존재”인 인간의 성장은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성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 가지 유형 중 신체적 성장이 가장 쉽게 관찰된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삶의 전부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신체적 성장은 저절로 일어나지만 감정적, 정신적 성장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세 유형의 성장 중에서 가장 성취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감정적 성장인데 “감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문제가 일반적으로 제일 고통스럽다. 사람이 유아기의 감정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자기 절제력의 부재,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무관심, 철저한 자기중심적 성향 등을 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무척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국정농단’의 실태를 알고 나서야 우리는 “정부와 공무원 조직은 비대해졌고, 기업 시스템은 거대해졌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매뉴얼은 없는 빈 깡통”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조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 박사는 조롱이 넘쳤던 이유를 공감능력의 결여에서 찾습니다. 공감이란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서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 내용을 활용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는 마음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자 특성의 하나”인 공감능력이 실종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하 박사는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한 축은 사이코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의 아픔 따위는 가슴에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목적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이코패스’들의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하 박사는 “우리 사회가 공감능력을 키울 기회를 주지 않고, 차라리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고 귀와 눈과 가슴을 막고 살아가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사이코패스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목격하고 우울과 분노에 시달리던 많은 이들이 광장으로 달려가 기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작은 실천 속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그 결과가 곧 나옵니다. 반드시 우리 사회가 ‘버전업’될 방향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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