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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의 직접 민주주의 축제는 승리로 귀결될까요?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 여부와 관계없이 시민축제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질서 준수와 북핵 위기를 입에 달고 살던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비선 실세에게 놀아나면서 정작 국민의 안전이나 행복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권력층 또한 국민을 개나 돼지로 여기면서 대통령에게 충언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고 제 주머니만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도요. 그들이 일자리 창출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자질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테크빅뱅이 만드는 미래는 보다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로부터 ‘위대한 사상가’라는 칭호를 얻은 케빈 켈리는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청림출판)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기계가 연결되어 하나의 세계적인 매트릭스를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접한 적이 없는 가장 복잡하고 가장 경이로운 무언가로 수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유보다 접근, 달리 말하면 공유가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제임스 글릭도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를 담은 <인포메이션>(동아시아)에서 정보는 “대부분 구글에 의해 진행되는 검색과, 올바른 사실을 모으고 잘못된 사실을 차단하려는 방대하고 협력적인 필터의 결합이다. 검색과 필터링은 이 세계와 바벨의 도서관 사이를 가르는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글릭은 이어 “두뇌를 만드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심지어 지식의 분배도 아니다. 바로 상호연결성이 두뇌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마케팅4.0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필립 코틀러를 비롯한 마케팅 전문가들도 이제 모두 ‘연결’만이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촛불광장의 경험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합니다. 모두가 연결해서 한목소리로 외쳤으니까요.

촛불광장의 주역은 고성장 시대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젊은 세대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늘 ‘연결’을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87년 광장의 젊은이들이 NL과 PD로 나뉘어 피 터지게 싸운 세대라면 지금 광장의 젊은이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개인(타자)을 서로 존중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세대입니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인생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로운 ‘삶의 문법’을 갖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지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올해에 근원적인 자아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봅니다. 삶과 몸, 치유 등에 대한 생각을 하나로 모아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찾아나서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시어도어 젤딘은 <인생의 발견>(어크로스)에서 “당신은 누구인가?”와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남들이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내가 남들을 얼마나 이해하는지가 내가 소유한 재산보다 더 중요하다. 개인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망하는지에 관한 훨씬 더 긴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소심한 시작일 뿐이다.”

‘훨씬 더 긴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우리는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수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여성들에게 인색하게나마 부여되는 역할이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아서 여성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으니까요. 그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여러 질문들을 던집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종교가 서로 다르다면 불화나 의심 이외에 다른 무엇이 가능할까? 자유가 너무 적다면 무엇으로 반란을 대체할까? 흥미로운 직업이 부족하다면 새로 어떤 직업을 창출할 수 있을까? 연애가 실망스럽다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 무너지는 제도 속에서 어떤 지혜를 살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것이 예측 불가능할 때는 무엇이 야망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어떤 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으려던 과거의 노력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았을뿐더러 간혹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낳은 역사를 기억할 것”이라며 “실망감을 떨쳐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기회로 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명심”하라는 충고만 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험난합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인류의 독창성과 스스로 만든 난장판에서 빠져나오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전례가 없던 길을 가야 하는 그들이 “사람과 자연에서 끊임없이 뜻밖의 경이로움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타고난 자질”을 발휘하더라도 “인류의 뿌리 깊은 잔혹성”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내기가 힘든 이들이 당장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 아마도 로맨스판타지에 빠져드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미 영화와 책에서는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막 끝난 드라마 <도깨비>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은 “경력의 사다리를 오르고 내리는 일”이 아닌 “긴 인생을 보내기 위한 즐거운 방법”을 제대로 탐색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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