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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 지하철 파업이 한창이었다.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서 인원을 감축하려는 방침에 대한 지하철 노조의 반발이었다. 


지하철 파업이 시작된 다음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교수들도 파업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한 지인이 알려줬다. 


지하철 파업에 비해 “배부른 파업”으로 비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사회적 반향도 크게 불러일으키기 어렵겠지만, 학생들과 교수들이 처우개선을 위해 연대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지인도 파업을 하긴 하지만, 관심을 끌기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도 점차 “한국처럼” 노동조건이 바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어떤 교육부 관계자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서 사교육 시장이 잘 발달한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때 대학등록금을 내지 않았던 영국 학생들도 요즘은 8000파운드 정도 학비를 낸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오늘날 학비를 내고 다니는 학생들이 과거보다 질적으로 더 좋은 대학교육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은 악화되고 있지만, 명분은 언제나 더 나은 효율성이었다. 지하철을 자동화하는 것이나, 대학교육에 더 많은 학비를 내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훨씬 수월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나 이런 수월성의 수혜자는 제한적이다. 수월성은 ‘탁월함’을 의미하고, 어떤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한에서 혜택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신용사회’라는 것이다. 연대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던 사회가 신용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신용사회’의 본질이다.


신용을 얻기 위한 관문이 바로 고등교육인 셈이고, 한국은 누구보다도 빨리 이 표준을 실천으로 옮겼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국에서 거의 모든 규범은 ‘신용사회’에 맞춰 재편되었다. 한국에서 사회의 역할은 가족으로 대체되었고, 그 부족한 부분은 네트워크로 채워졌다. 


네트워크 민주주의야말로 한국의 현실주의자들이 도달한 역사의 종착역인지도 모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공론의 기능을 떠안는 구조는 의회제도로 수렴할 수 없는 정치를 안정화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대는 기업과 도시중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들에 대한 지지로 환원되고, 이런 의회정치의 안정화가 ‘선진화’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가 세계화하면서 중심에 있던 문명이 주변화하고 주변에 있던 문명이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한국만큼 제대로 증명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런던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때 복지국가 영국을 효율적인 시장 중심 영국으로 바꾸자고 외쳤던 마거릿 대처의 유토피아가 한국에서 이미 실현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벌써 한국은 선진국인 셈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경향DB)



빅토리아 극장에서 봤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대사 한 대목이 떠올랐다. 영화보다 더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이 ‘노동자 뮤지컬’은 대처리즘과 일전을 벌였지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계급의 운명을 보여주는 현대판 비극이기도 하다. 빌리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하지만 그의 가족이 참여한 광부들의 파업은 실패로 끝난다. 빌리의 형인 토니는 “공룡처럼 우리는 멸종할 것”이라고 절규하면서 “모두가 빌리처럼 발레를 할 수는 없다”고 토로한다.


이른바 인간자본을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일상으로 만드는 체제라고 말한 미국 비평가의 진단이 여기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광부들이 빌리처럼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면 구조조정에서 기인하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노동자가 창조산업의 역군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백조가 될 수 있는 것은 ‘미운 오리새끼’이지 진짜 오리일 수 없다. 노동자의 파업은 이런 자각의 실천이다. 래서 근본적인 변화는 노동과 실업에 대한 아직은 작지만 의미 있는 정치의식에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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