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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한 달’을 보면 그들 뿌리인 노무현 정부와는 많은 면에서 달라 보인다. 그들은 어눌하고, 그 어눌함으로 핍박받던 15년 전과는 판이하다. 야권에선 “완전히 프로가 돼 돌아왔다”(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는 비명 아닌 비명조차 들린다.

무엇보다 뚜렷한 차이는 ‘권력의 사용법’이다. 노무현 정부가 ‘참여’의 대의 속에 권위·권력을 내려놓는 개혁에 나섰다면, 문재인 정부의 길은 전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총을 질타하고 돈봉투 만찬과 사드 보고 누락을 문제 삼는가 하면,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표지갈이” 발언으로 관료들의 머리를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런 ‘액션’을 통해 재벌·검찰·군·관료 개혁의 틀과 흐름도 다잡아 가고 있다. 그 속도와 개인기는 몽골기병처럼 빠르고 매섭다. ‘여우의 지혜’로 가득한 마키아벨리의 향기마저 난다.

“노무현 정부 초기 부안사태와 미군기지 재배치는 잘 모르고 당한 측면이 크다. 공무원들이 2008년에 임시처리장이 포화가 되기 때문에 2004년 착수해야 한다고 다급하게 보고했다. 부안사태가 터지고 결국 깨졌다. 그러고 나서야 새 응축기술이 개발돼 몇 년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 한마디로 속은 거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참모의 증언이다. 관료집단의 새 정부 ‘간보기’와 파열음은 노무현 정부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2008년 조급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몰락 직전까지 갔고, 박근혜 정부도 2013년 신고리원전 3호기 가동에 맞춰야 한다는 보고에 휘둘려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 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내내 청와대에서 권력의 쓴맛·단맛을 모두 맛본 당사자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관료와 정부 관계설정 과정의 통한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는 의미다.

실상 국민은 권력을 청와대에 위임하지만, 청와대는 관료라는 ‘집단적 권력’ 위에 얹혀진 ‘섬’과 같다. “청와대에 파견 온 부처 출신들은 대통령 보고서를 늘 2개 만든다. 하나는 정상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하나는 출신 부처로 보낸다. 장관은 그 보고서를 미리 숙지해 대통령을 만나니 현안에 그렇게 밝을 수 없다. 대통령이 탄복하지 않겠나. 시험지를 미리 보고 시험을 치는 거다.”

권력 피라미드 정점에 있지만 통틀어도 500명 남짓 청와대가 100만 공무원을 거느린 관료집단을 제대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비서관·행정관 상당수도 관료 출신들이다. 실체를 숨긴 ‘관료 정치’는 겨울밤 안개처럼 국정의 모든 곳을 조용히 덮고 있다.

강력한 면역경험으로 관료 정치에 ‘준비된’ 문재인 정부도 전광석화처럼 ‘취임 100일 작전’을 끝내고 나면 근본적 과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늘 이렇게 혁명정부처럼 국정을 끌고 가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 권력 앞에 풀처럼 가지런히 눕지만 바람이 조금만 바뀌어도 머리를 삐죽삐죽 내미는 게 관료 정치의 독성이다. 노무현 정부의 아파트 후분양제와 종합부동산세를 좌절시키고, 검찰 개혁을 무력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문재인 정부 ‘권력 사용법’의 궁극적 퍼즐은 비정상적 관료 통제 시스템의 ‘창조적 해체와 대안’일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구조의 대통령제가 관료제 국가의 민주적·대의적 통치에 부족하다는 점은 확연하다. 한 전직 장관은 사석에서 “입각하고 보름 되니까 알겠더라. 5년 단임대통령제는 영원한 관료지배의 충분조건이더라”고 토로했다.

관료들 입장에선 입맛에 안 맞는 정권도 5년만 ‘면종복배’하면 된다. 그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장관들에게 건넨 “정권은 유한하나, 조국은 영원하다”는 발언은 관료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경고음으로 들린다.

관료 권력은 우리 사회가 개헌 논의와 맞물려 심각하게 권력구조 문제를 공론화해야 하는 이유다. 관료제를 단순히 청와대가 아닌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제도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대통령에게만 지워진 관료 통제의 권한과 책임을 보다 넓은 선출직 공직들로 확장하는 제도가 본질이다. 최소 주권자들 표심의 결과물인 선출직 공직의 신성함을 관료들이 비웃을 수 있게 하는 현행 5년 단임제의 해체는 필수적이다.

이 같은 권력 사용법의 최대 걸림돌인 ‘정치 불신’은 다른 제도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출발점은 표심과 정확히 일치하는 선거제도 정비다. 민심과 일치할 때 대의제의 관료 통제는 더 강력해진다.

모두 쉽지 않은 숙제다. 그동안 지역과 ‘유사이념’으로 편 가른 정치세력들이 만든 ‘불신의 바벨탑’이 우리 정치와 대의제 한복판에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벽의 파괴 없는 정치의 미래에 정말 자신이 없다.

김광호 정치·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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