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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집은 전쟁터였다. 총칼이 있는 전장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다툼이 시작되면 집 안엔 냉기가 돌았다.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 그릇 깨지는 소리. 분쟁의 환경에 어린 나는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지난달,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과 아프리카 우간다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의 유년 시절을 닮은 소년병 출신 청년을 만났다. 우간다 반란군에 의해 군인과 성노예로 납치되었던 아동 7만명 중 한 명이었다. 총격, 폭탄, 학살. 스무 살 청년이 나열하기엔 너무도 참혹한 분쟁의 순간들이 그의 어린 시절 기억 대부분을 차지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전쟁이 끝난 후였지만, 그는 여전히 ‘생활형 전쟁’ 속에 살고 있었다. 10년 넘는 징집 생활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소년병 출신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만한 뿌리가 없다. 월드비전은 20년 넘게 심리치료, 재활, 직업훈련 등으로 소년병과 함께하고 있었다. 한 번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평화를 되찾아 주는 데는 긴 시간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아동 22억명 중 10억명이 정치, 종교, 민족 간 분쟁으로 인한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이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오는21일은 ‘세계 평화의날’이다. 이 날을 맞아, 한 명의 아이라도 더, 폭력이 아닌 평화에 노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른인 우리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힘을 모은다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평화를 선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창옥 | 김창옥 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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