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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경남지역 보육원에 있는 고아 소년들이 모여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었다. 축구로 희망을 일군다는 뜻에서 ‘희망 FC’라 이름붙인 이 팀은 곧 해체되고야 만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차피 꺾일 ‘헛된 꿈’을 꾸면 안된다는 보육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교육 열풍 속에 공부로는 희망을 찾을 길 없는 가난한 아이들, 오직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에서 희망을 찾자는 이 작은 움직임은 지역아동센터로 옮겨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층 자녀들로 구성된 새로운 ‘희망 FC’는 박지성,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구슬땀을 흘렸다. 경남도민 축구단이 유니폼을 지원해주고, 단장이 사비를 털어 훈련용품과 대회 참가비용을 마련했다. 감독도 아이들의 ‘꿈’을 위해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한 채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불우한 환경 탓에 우울하고, 소극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폭력적이던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절제와 인내와 협동과 우정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꼭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다 해도, ‘희망’을 품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친구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그 경험은, 어린이라면 ‘누구에게나’ 제공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6년간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쳐 실력이 향상된 지난해, 이제 ‘희망 FC’ 선수들이 중학교 축구팀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그때,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외부 지원 없이는 더 이상 팀을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직 기댈 것은 지역 리그 우승팀들만 출전할 수 있는 ‘전국 왕중왕전’ 진출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2위로 마감된 리그를 끝으로 ‘희망 FC’는 해체되고 만다.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지금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이 전하는 내용이다.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춤과 노래, 연기 등 대중예술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꿈’과 ‘희망’의 길은 막히고 끊긴 지 오래다. 각종 학원과 클럽에서 비싼 비용을 주고 교습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을 수 없다. 그 ‘기회’들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그 길을 갈 생각도 없는, 있는 집 아이들의 취미나 ‘스펙’을 위한 도구로 점유당하고 있다. 소수의 부자가 사회적 부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다수의 노동자가 그 나머지를 분배받는 ‘불평등한’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는, ‘기회의 균등’과 ‘복지’ 두 가지일 것이다. 부모의 재산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노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함. 그리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복지’. 이 두 가지 자본주의의 미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수 노동계층의 분노와 불만이 극대화할 수밖에 없고, 군대와 경찰 등 ‘제도의 폭력’과 언론과 방송을 통한 ‘상징과 여론 조작’에 의존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전체적인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분열과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되는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권력자와 부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비극으로 치닫는 지름길인 ‘제도의 폭력과 여론조작’에 의존하면 안된다. 자연스러운 신분상승과 자기실현의 기회 분배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대중예술 각 분야의 일정한 비율은 노동자 계층과 저소득층과 고아들과 장애인 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자녀들이 담당할 수 있는 사회 설계를 해야 한다.

우선 ‘희망 FC’를 살려야 한다. 각 지역에 그 지역 ‘희망 FC’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보육원과 지역아동센터와 그룹홈에 있는, 각 분야 소질과 꿈을 가진 아이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기회’를 부여받게 해줘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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