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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크림빵 뺑소니사건’은 누리꾼의 관심과 참여가 없었다면 해결되지 못할 뻔했다. 곧이어 딸의 자전거가 도난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대응이 없자 아빠가 스스로 범인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 팔달산 ‘시신 훼손 유기사건’ 범인 박춘봉도 시민의 제보가 없었다면 미궁에 빠질 뻔했다. 울산 ‘봉대산 다람쥐’로 불린 연쇄 방화범 역시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와 폐쇄회로(CC)TV 분석 노력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산불을 냈을 것이다.

경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의 공은 줄이고, 경찰의 공은 부풀리려다 망신을 자초하곤 했다. 반면에 시민의 참여와 제보가 부족했던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 화성 여대생 피살사건, 포천 여중생 피살사건, 서울 노들길 여성 피살사건 등은 ‘영구미제’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경찰은 범죄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 많은 경우, 현장은 훼손되거나 조작되어 있고 증거의 상당 부분은 인멸된 다음이다. 제아무리 실력 좋은 CSI와 프로파일러를 투입한다 한들, 사건 발생 당시나 전후에 현장 인근에 있었거나, 피해자와 용의자를 잘 아는 시민들의 도움 없이는 단서를 찾고 수사 방향을 제대로 잡아 나가기가 힘들다.

미국 FBI의 발표에 따르면 해결되는 범죄사건의 70%는 시민의 제보나 참여가 결정적 요인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이 시민의 공을 줄이고 감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범죄수사는 원래 시민들이 함께 ‘공동체의 적’을 찾아 퇴치하는 과정이며 경찰은 그 일을 전담해서 맡아하는 담당자일 뿐이다.

경찰과 국가는 범죄수사에 참여하고 지인에게 불리한 신고나 제보를 한 시민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한편, 엉뚱한 오해나 오인 혹은 악의적인 모함을 막고 구별해 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시민참여형 범죄수사’의 장점과 특성 및 원리를 일찍 깨달은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는 1976년 ‘익명신고+민간 수신자부담 전화접수센터+지역 언론의 공개수배+지역 상공인의 기부로 조성된 신고포상금’을 제도화한 ‘범죄퇴치 재단’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와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된 이 운동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총 95만2912명의 범죄자를 검거하고 총 20억달러가 넘는 도난금품을 회수했으며 총 82억달러어치가 넘는 마약을 압수했다.

한편 미국 필라델피아에 그 본부를 둔 ‘비독 협회(Vidocq Society)’는 각 분야 민간전문가들이 모여 각 지역 경찰이 의뢰하는 미제사건을 분석해 수사를 돕는다. 또한 잘못된 수사와 기소 및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중범죄 기결수들을 위해 증거와 단서들을 다시 분석해 재수사하는 민간 전문가들의 모임인 ‘무죄입증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지금까지 총 325명의 사형 혹은 종신형 수감자들의 누명을 벗기고 자유를 찾아 주었다.

누리꾼이 흐릿한 CCTV 영상을 통해 판독해낸 도주 용의차량 번호. 결과적으로 이 추론은 틀렸지만, 인터넷커뮤니티 보배드림은 크림빵 아빠 사건을 알리고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출처 : 경향DB)


경찰이나 군 수사기관, 검찰, 국과수 등 국가기관이 범죄수사를 독점하고, 그 절차와 과정을 외부로부터 차단한 채 경쟁과 투명성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는 오만이며 시대착오다. 사건 발생률을 줄이고 검거율을 부풀려 허울만 좋은 ‘높은 범죄 해결률’을 자랑해 봐야 시민의 체감 안전도는 낮아지기만 할 뿐이다.

‘청와대 폭파’ 전화협박범의 소재를 신속하게 파악해 프랑스에서 소환해 오는 모습의 뒤안길에는 절도와 사기, 성범죄와 사이버 모욕에 치를 떠는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고, 살인범들이 공소시효를 넘기며 자축하는 아비규환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부족한 증거와 석연치 않은 정황에도 반인륜 파렴치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과 수사기관, 사법기관이 신뢰받고 효율적으로 범죄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시민의 참여와 협력뿐이다. 범죄 퇴치, 시민에게 개방하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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